농가에서 태어나 군청사환으로 일했다. 보통학교 졸업이 전부였지만 뛰어난 언변으로 가는 곳마다 눈에 띄었다. 독립운동에 투신하다 초대 정부 장관을 지냈고, 분단국가에서 '평화통일'을 주장하다 간첩죄로 사형 당했다. 억울한 죽음을 사후 52년 만에 대법원이 의해 국가에 의한 사법살인으로 인정했다.
한국근현대사의 축소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죽산 조봉암(1899~1959) 선생의 삶이 책으로 출간됐다. 을 쓴 소설가 이원규(66) 씨가 6년여 산고 끝에 내놓은 (한길사 발행)은 철저한 고증에 바탕했지만 소설과 르포를 섞은 독특한 형식이다.
이씨는 "이전 두 평전을 쓰면서 한국의 독립운동, 공산주의운동 역사를 꿰고 있었지만 조봉암은 새로운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제 고향이 인천이고 그 중에서도 어렸을 때 살던 곳이 죽산의 지역구 강화도였어요. 아버지 친구, 동네 어르신들 중에 조봉암 선생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분들이었고요. 작가면 누구나 '나 아니면 못 쓴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이번 책이 그런 책이었죠."
하지만 자신감과 달리 집필과정은 녹록하지 않았다. 해방 이후 현대사 자료조사가 만만치 않았을 뿐더러 죽산의 사생활, 가족사를 증언해줄 지인들을 수소문해 찾아야 했다. 이씨는 오른쪽 중지에 박힌 굳은살을 보여주면서 "죽산에 관한 당시 신문ㆍ잡지 기사, 연구 자료를 연도별로 정리했는데 이것만 200자 원고지 800매 정도 된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죽산의 큰딸이자 비서였던 조호정 여사를 비롯해 죽산과 관련된 원로들의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집필 과정에서 죽산의 첫사랑 김이옥 여사와의 결혼이 김이옥의 부모가 아니라 오빠의 반대로 무산됐다는 사실, 죽산이 유학시절 처음 만난 김찬, 장택상 등과 이념을 뛰어넘어 우정을 나눈 사실 등을 새롭게 밝혔다.
평전은 1959년 조봉암의 사형집행과 이후 사람들의 표정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하면서 시작한다. 이후 죽산의 어린 시절과 독립운동 투사로 활동하다 조선공산당을 창당하는 과정, 초대 내각에서의 정치 업적과 죽음 이후 남북한, 미국의 반응을 입체적으로 그렸다. 저자는 "죽산에 관한 연구자료는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았다"며 "지난해 한국일보에 조봉암 생애를 10회로 연재하면서 조사한 자료들을 정리해 평전의 전체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한국에서 진보라는 말을 정치에서 처음 쓰고 실현하려 한 사람이 죽산이었다"고 평했다. "비유하자면 조봉암 선생은 광야에 혼자 횃불 들고 나가신 분이죠. 죽산이 대통령 선거를 두 번 출마하면서 3가지를 주장했는데, 책임정치, 수탈 없는 정의로운 경제, 평화통일이었어요. 60년이 지난 오늘까지 이루지 못한 이상입니다."
집필에 지긋지긋할 정도로 매달려서 책 서문에 '마지막 평전이 될 것'이라고 썼지만, 이씨는 또다시 한국 근현대사 인물의 평전을 준비하고 있다. "젊었을 때 소설, 평전 쓰면서 뛰어다니며 찾아낸 사실들이 있거든요. 아직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좀 더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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