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연합군의 노르만디상륙작전 이후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던 7월 20일 낮 12시 40분. 독일 수뇌부의 지하벙커 '늑대소굴' 회의실 탁자 밑에서 폭탄이 터졌다. '7ㆍ20쿠데타', 또는 '발키리작전'으로 불린 히틀러 암살모의가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회의 직전 히틀러 부관이 폭탄 든 서류가방을 탁자다리 옆으로 밀어놓은 작은 행동 하나가 역사를 갈랐다. 굵은 탁자다리의 방패 역할로 히틀러는 고막 파열 등의 가벼운 부상만 입고 극적으로 살아났다.
■ 회의실에 미리 들어가 시한폭탄 가방을 놓고 나간 이는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었다. 북아프리카전선에서 왼쪽 눈을 잃은 용모로 영화 에서 톰 크루즈가 분(扮)한 그 인물이다. 북구 신화의 여전사 이름인 '발키리'는 정확히 말해 히틀러 제거 후 베를린의 예비군을 동원해 정국을 장악하고 전쟁을 종결시키는 계엄작전명이었다. 현장 밖에서 암살성공을 확신한 그는 베를린으로 가 후속조치를 취하려다 체포돼 이튿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 이 사건으로 분노가 폭발한 히틀러는 직간접으로 관여한 인물은 물론, 평소 나치에 비판적이던 군인과 지식인 등 무려 7,000여명을 체포해 5,000여명을 즉결 처형하는 피의 광란을 벌였다. 전쟁영웅 롬멜 원수와 클루게 원수는 처형 대신 자결을 택했고, 유명한 진보신학자 겸 철학자 본 회퍼도 체포돼 이듬해 옥사했다. 당시 함께 체포됐다가 극적으로 살아남은 발키리의 유일한 생존자 폰 클라이스트가 며칠 전 90세로 사망했다는 외신이 전해졌다.
■ 때마침 지난해 평양에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을 해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정찰총국 내부에서 주도권을 둘러싼 총격전과, 이후 김정은 위해 기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천안함ㆍ연평도 도발 책임자로 알려진 김영철의 이례적 두 계급 강등도 이 때문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물론 워낙 정보접근이 제한된 북한 핵심부의 일이라 진위는 알 수 없다. 다만 요즘 북한이 막판으로 치닫는 듯한 행보를 보이는 상황에서, 잇따라 전해진 두 소식이 꽤나 공교롭다.
이준희 논설실장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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