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4ㆍ24 재보선 서울 노원병 출마 선언과 함께 돌아왔다. 그의 귀환을 보는 세상 눈길은 각양각색이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살찌고 게으른 청어를 긴장시킬 '메기의 귀환'이라고 반겼다. 물메기(꼼치)와 메기를 혼동했지만, '새 정치' 기대를 전하는 데는 모자람이 없다. 새누리당 예비후보인 허준영 전 경찰청장은 '풀 뜯으러 온 종이호랑이'라고 짐짓 평가절하했다. 득표 경쟁의 당사자로서 자연스럽다. '벼룩 간 빼먹기'라는 진보정의당의 반응도 당연하다. 지난해 총선 당시 야권연대의 몫으로 따낸 선거구이고, 노회찬 공동대표의 의원직 상실로 보궐선거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연고권을 내세울 만하다.
민주통합당은 아직까지 '통일견해'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친노ㆍ주류 그룹은 일단 지난해 후보단일화 과정을 일부 공개, 비난 자세를 내비쳤지만, '타도 대상이 아닌 동반자'라는 시각도 남아있다. 5월 전당대회를 앞둔 계파 간 신경전이 얽혀있고, 실낱 같지만 야권연대의 희망을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어 통일견해 형성이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민주당 전체의 집합적 인식을 이리저리 더듬을 때 '알 박기'에 대한 곤혹스러움이 맨 먼저 손에 잡힌다. 부동산 개발이 알 박기에 비틀거릴 때 그 요구에 응할지 여부를 둘러싼 선택의 고민은 개발이익, 즉 보유지분이 많을수록 커진다. 노원병 지역은 노 전 의원의 땀이 어렸지만, 야권연대의 해체를 전제하면 역시 민주당이 최대 주주일 가능성이 크다.
그의 알 박기는 절묘했다. 재보선 대상 지역에서 야권 성향이 가장 뚜렷한 곳을 골랐다. 전 주인은 떠나고, 승계자가 제대로 부각되기 직전의 짧은 공백기를 정확히 짚었다. 민주당은 진보정의당이 노 전 의원의 부인 김지선씨를 후보로 내세울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제1야당의 체면도 있었지만, 지난해 총선과 대선을 거치며 형성된 야권연대나 후보단일화 관성이 크게 작용했다. 눈길을 정치권 전체로 옮겨도 정부조직 개편을 둘러싼 여야 대치로 국민의 피로감이 커진 때였다. 당장의 알 박기 성공도 중요하지만, 기존 여야구도를 깰 제3세력 성장의 교두보를 확보해야 할 안 전 교수로서는 놓쳐서는 안될 기회였다.
바둑판에서 떨어져서 보면 수가 한결 밝아지듯, 80여 일의 미국 체제 기간에 그의 현실정치 감각이 그만큼 날카로워졌다. 너무 쉬운 곳을 골랐다고 실눈을 뜨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도 무덤덤하게 "가장 낮은 곳에서 다시 시작한다"고 밝힐 정도로 낯도 두꺼워졌다. 하기야 그 진영에서 흘러 나온 "명분보다는 현실"이라는 말에 비추면, 그의 '낮은 곳'은 '작은 것'의 에두른 표현이다. 거창한 명분 대신 승산을 잣대로 삼아 작은 것부터 이뤄가겠다는 뜻이리라.
그의 알 박기는 지난해 대선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맛본 정치적 실패의 반성에서 비롯한 것이기도 하다. 출마 선언을 주저하다가 제1야당의 후보가 먼저 결정되고 보니 단일화 불발에 뒤따를 도의적 부담감이 상대적으로 문재인 의원보다 훨씬 더 커졌다. 그런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자주 입술을 깨물었을 법하다.
그의 알 박기가 민주당에 던진 고민은 노원병 재보선 후보 옹립 여부에 그치지 않는다. 대선 패배 이후 제기된 변화 요구, 즉 이념ㆍ노선 색채보다 구체적 삶의 개선에 정책 무게중심을 두고, 지지 확산을 위해 '우(右) 클릭'하라는 주문이 무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조직 개편을 둘러싼 여야 갈등에 대해 안 전 교수가 제시한 타협안에서 보듯, 중도 타협의 공간은 안 전 교수의 차지가 되어가고 있다. 노원병 보궐선거 결과 신당 창당 움직임이 본격화할 경우 민주당의 공간은 한결 좁아진다.
그의 알 박기는 일단 성공적이다. 아직 최종 성패는 알 수 없지만, 제1야당을 보란 듯이 압박하고도 과거처럼 '제2 중대' '사쿠라' 소리를 듣지 않는 것만도 크다. 정치판이 변하기는 변했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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