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이기 이전에 출판기획자로서 생업을 유지하기 위해 나는 빅셀러의 기획을 늘 꿈꾼다. 빅셀러는 사실 적합한 마케팅과 프로모션이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에 기획자 개인의 능력으로 한정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그리고 빅셀러는 신드롬처럼 특정하게 형성된 어떤 사회적 현상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에 시장이 응전하는 구조를 가지는 것이어서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기획적 개념이 다소간 희박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런 관점이 가능하다고는 해도 출판 기획자라면 응당 사회적 현상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출판 기획자의 개인적 능력이 보다 직접적으로 발휘될 수 있는 것은 빅셀러보다는 스테디셀러나 총서류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것은 꾸준하게 축적된 인문적 교양과 삶을 읽어내는 웅숭깊은 직관과 성찰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테디셀러는 사실 빅셀러를 만드는 것보다 몇 배는 힘든 일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출판시장의 현실적 상황은 스테디셀러나 총서를 기획하는 것을 매우 어렵게 하고 있다. 수요자의 반응에 대한 시장과 생산자들의 인내심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인데, 이는 다른 회사들과 마찬가지로 출판사의 기업 활동 역시 투여된 자본을 회수하는 사이클이 빨라져야 지속 가능한 쪽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두 느릴 때는 아무도 숨가쁘지 않았는데, 조금씩 조금씩 빨리 뛰어가는 사람이 생겨서 이젠 모두가 숨이 가빠졌다.
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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