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일원화로 자격자 뽑아 평생법관제로 자리 보장해야퇴직 후 변호사 개업 안해도 불명예되지 않는 풍토 필요""총수 구속 관행 수준 아니다… 막말판사 직접 조치 강구""대법관 업무 과중… 결단 시점" 상고 심사부·항소법원 등 시사
"전관예우는 법원 전체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원죄' '족쇄'와 같은 문제다. 전관 자체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근본적인 치유 방법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13일 오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주최로 서울 중구 태평로1가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박근혜 정부 고위공직자 인사검증 과정에서 불거진 전관예우 논란으로 법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특히 대형 로펌이 전관예우의 피난처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한 답변이었다.
대법원장이 언론단체 초청 토론회에 참석한 것은 처음이다. 2006년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 토론회에 참석하려다 북한 핵실험 사태로 무산된 적이 있다. 양 대법원장은 각 언론사 주필, 논설위원 등 30여명이 패널로 참석한 이날 토론회에서 전관예우, 재벌 총수 법정구속 등 최근 법조계와 사법부를 둘러싼 각종 이슈에 대한 질문에 자신의 견해를 가감없이 밝혔다.
전관예우 문제에 대해 양 대법원장은 "법조 일원화를 통해 '판사가 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판사가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을 임용해야 한다"며 "법관이 한번 법원에 들어오면 사표를 내고 변호사 개업하는 일이 없어지는 평생법관제의 풍토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법관들이 평생 법원에 몸담을 수 있도록 처우 개선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법조 일원화'는 일정 경력자를 법관으로 채용하는 제도로, 법원장이 임기를 마친 후 일선 재판부로 다시 돌아가는 '평생법관제'와 함께 양 대법원장이 적극 추진하고 있는 제도로 각각 2013년, 2012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김승연 한화 회장, 최태원 SK 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이 잇달아 법정구속된 것을 두고 법원의 재벌사건 양형이 강화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양 대법원장은 "법정구속이 늘어났다고 이를 '기업 총수는 실형과 법정구속'이라는 (재판) 관행의 위치에 올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단지 몇 개 사건이 우연히 겹쳤을 뿐 특정 피고인을 달리 취급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과거처럼 재벌 회장이 구속되면 경영 공백이 우려된다거나 과거 경제발전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관대한 처벌을 하는 것이 아닐뿐더러, 단지 재벌이라는 이유로 가중처벌을 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양 대법원장은 이와 관련해 지난달 1심에서 법정구속됐다가 8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난 조현오 전 경찰청장을 언급하며 "국민들에게 법원이 인신구속을 가볍게 처리한다는 인식을 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앞서 그는 조 전 청장 보석 결정 후 지난 4일 연임법관 오찬간담회에서 "재판에 임할 때나 인신구속ㆍ보석을 결정할 때는 좀 더 신중하게 임해달라"며 에둘러 유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최근 우리사회의 이슈가 된 성폭력범 등 강력범죄 피고인에 대한 양형기준이 너무 낮다는 지적에 대해 양 대법원장은 반대 의견을 밝혔다. "양형기준은 이 시대 이 사회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반영한 것으로, 전면적으로 잘못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오히려 "일시적인 여론을 따라가다가는 사회적 기준 자체가 모호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양 대법원장은 '막말 판사' 논란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그는 "법정 언행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또 다시 발생한 실수에 변명의 여지가 없고,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법정 모니터링 강화 등 좀 더 직접적인 조치를 강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동부지법 최은배(47) 부장판사가 얼마 전 페이스북에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 임명을 반대한다는 글을 올리는 등 법관의 정치적 의견 표명이 잇따르고 있는 데 대해 양 대법원장은 "법관이 정치적 발언을 할 때는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며 "법관이기 때문에 발언이 예측 못한 방향의 파문을 던질 수 있고 결국 법원의 신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11년 9월 취임 후 1년 반 정도 대법원의 실상을 지켜본 그는 "대법관의 업무 과중이 심각해 대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는 고민이 있다"며 "현재 상태로 가는 것은 무리라고 보고,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온 것 같다"고도 말했다. 지난해 대법원에 접수된 사건이 3만6,000여건에 달하는 등 재판 자체의 부하가 지나치기 때문에 대법원 내 상고심사부 설치나 항소법원 별도 설치 등을 검토하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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