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자업체 샤프와 100억엔대 출자에 합의한 삼성전자가 당초엔 발행주식의 10%가 넘는 400억엔대 출자를 제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2일 '무너지는 일본-대만 공동투쟁'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샤프가 삼성전자의 출자를 받아들이기까지의 생생한 과정을 상세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해 12월13일 오사카 샤프본사를 방문, 가타야마 미키오 샤프 회장, 오쿠다 다카시 샤프 사장과 회동했다. LCD를 둘러싸고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두 회사 고위급 인사의 첫 대면이었다.
이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10세대 LCD를 생산하는 사카이 공장에 출자하고 싶다는 의향을 내비쳤다. 이에 오쿠다 사장은 "사카이 공장은 대만 홍하이와 함께 하고 있어 어렵다"고 답했다. 홍하이는 지난해 3월 사카이 공장 지분 46.5%를 인수했다.
대신 샤프 경영진은 "사카이 공장 대신 대신 샤프 본사에 출자해줄 수 없겠냐"는 의사를 타진했다. 샤프는 극심한 경영부진으로 외부자본수혈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이에 이 부회장은 "고려해 보겠다"고 했고, 이후 자본제휴 협상을 위한 논의가 시작됐다.
당초 샤프 경영진 일각에선 삼성전자의 출자에 대한 거부감이 매우 컸다. 일부 사외이사들은 "샤프를 곤경에 몰아넣은 숙적이나 다름없는 삼성전자의 출자는 안 된다"고 반대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삼성전자는 당초 400억엔 정도의 출자를 제안했으나 (출자액이) 103억엔에 그친 것은 이런 내부 감정에 대한 배려의 결과일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던 중 삼성전자와 출자협상이 진행되면서 샤프 부진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미에현 카메야마 공장에 이변이 일어났다. 중소형 패널과 TV용 패널을 생산하는 제2공장은 판매부진으로 지난해 3분기 가동률이 30%에 불과했으나, 삼성전자의 TV용 패널주문이 갑자기 늘면서 가동률이 60%까지 높아졌다. 마침 애플의 아이폰5 패널을 생산하던 제1공장의 가동률마저 급감, 샤프 내에선 "삼성 밖에는 기댈 곳이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졌고 결국 두 라이벌의 역사적 자본제휴는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었다.
마지막 변수는 대만 홍하이였다. 샤프는 홍하이와도 협의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삼성전자 출자소식이 전해지자 궈타이밍 홍하이정밀공업 회장은 이달 5일 예정됐던 오쿠다 사장과의 면담을 전격 취소하겠다고 통보했다. 불편한 심기의 표출이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타도 삼성을 내걸고 샤프와 손잡아 디지털 패권을 노리던 홍하이정밀공업이 도리어 샤프에 배신당했다"고 보도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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