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신입생이 중학교 때 친구들에게 2년여 동안 당한 학교 폭력 피해를 호소하며 자신이 사는 아파트 꼭대기 층에서 뛰어내려 숨졌다. 지난해 피해학생들의 연이은 자살사태로 학교폭력에 대한 대대적인 실태파악과 단속에 나섰던 교육과학기술부와 각 지역교육청, 경찰의 조치가 수박겉핥기였던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의 피해학생이나 가해학생들은 지난해 1학기 경북교육청의 조사에서 학교폭력 상담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11일 오후 7시40분쯤 경북 경산시 모 아파트 23층에서 최모(15)군이 뛰어내려 숨졌다. 아파트 경비원(70)은 "갑자기 '쿵'하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학생이 아파트 현관 지붕 위에 떨어져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현관 옆 바닥에 떨어진 최 군의 가방에서 '2011년부터 지금까지 5명으로부터 폭행, 갈취 등 괴롭힘을 받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발견했다. 최 군은 A4 크기의 공책 두 장에 적은 유서에서 가해 학생들의 이름을 모두 적었다.
최 군은 유서에서 "내가 당한 것은 물리적 폭력, 조금이지만 금품갈취, 언어폭력 등등. 학교폭력을 없애려고 하면 CCTV를 더 좋은 걸로 설치해야 한다"며 "주로 CCTV가 없거나 사각지대에서 맞는데, 돈이 없어서 설치 및 교체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핑계"라고 적었다.
특히 최 군은 '집에서 반년 동안 함께 살았던 K군이 앞장서 괴롭혔다'고 적어 최 군의 부모는 놀라움과 한탄을 그치지 못하고 있다. 최 군의 아버지는 "2011년 겨울부터 6개월 정도 우리 집에서 아들처럼 여기며 K군에게 밥도 먹이고 옷도 사 입히며 데리고 살았다"며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최 군은 가끔 얼굴에 멍이 들고 긁히는 상처를 입었지만 "넘어져 다쳤다"며 부모를 안심시켰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 군이 지난달 졸업한 중학교 교감은 피해ㆍ가해 학생들이 학교폭력 실태조사에서 전혀 드러나지 않은 데 대해 "최 군은 복도에서 누가 지적하지 않더라도 실내화로 갈아 신고 다닐 정도로 밝고 온순한 학생이었다"며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 모두 학교에서 한번도 폭력으로 문제된 적이 없는 평범한 학생인데다 교내 19대의 CCTV에도 아무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교감은 또 "겁이 많은 K군은 언어구사가 힘들 정도로 지능이 떨어지는 학생이어서 도저히 가해학생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은 숨진 최 군이 가해자로 지목한 학생들 중 일부가 다른 학생들에게도 폭력 등을 행사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북경찰청은 이날 최군이 다닌 고등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수사를 벌인 결과, 몇몇 학생들로부터 "중학교 시절 가해학생으로 지목된 학생들에게 (최군과 똑같은)괴롭힘을 당한 적 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특히 최 군의 한 중학교 동창(15·고1)은 "유서에 적힌 A와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는데, 당시 한 친구가 A에게 맞아 눈과 입이 터져 수술을 받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가해학생들을 조만간 불러 최 군이 남긴 유서내용에 대한 사실여부를 확인하고 또 다른 피해학생들에 대한 수사도 병행할 방침이다. 경찰은 또 최 군이 지난 5∼8일 4일간 학교 기숙사 생활을 한 후 "앞으로 집에서 통학하겠다"며 11일 집을 나간 후 등교하지 않은 것으로 미뤄 고교 부적응이 자살 원인이 됐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다.
경북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숨진 최 군 외에도 피해를 당한 학생들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산=전준호기자 jh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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