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작가들이 직접 지도극작법 더불어 선배 경험 전수"선배 극작가·지망생 공동체"
부산에 사는 뮤지컬 작가 지망생 김지은(33)씨는 목요일마다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온다. 라푸푸서원의 뮤지컬 작가반 수업을 듣기 위해서다. 라푸푸서원은 대학로에서 유일하게 희곡과 뮤지컬 극본 창작을 배울 수 있는 곳. 연극 현장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극작가들이 직접 지도한다. 극작가 선욱현 차근호 고연옥 김나영 강석호 정범철 최원종을 비롯해 뮤지컬 배우, 연출가, 작가, 작곡가 등이 여기서 가르쳤거나 가르치고 있다.
라푸푸서원은 희곡작가 겸 연출가 최원종(38)씨가 선배 극작가 선욱현 차근호씨와 힘을 합쳐 2006년 시작했다. 현재 수강생은 부산과 포항에서 들으러 오는 3명을 포함해 43명. 서울예대, 한국예술종합학교 등 대학의 희곡 전공이 각각 10명 정도밖에 안 되는 데 비하면 엄청나게 많은 숫자다. 주로 20대 초반부터 40대까지 직장인이고, 한 반에 평균 7명씩 주 1회 수업을 한다. 희곡 창작은 3개월, 뮤지컬 창작은 7개월 과정인데, 반드시 작품을 써내야 한다.
지금까지 이 곳을 거쳐간 수강생은 600명에 육박한다. 최근 3년간 서울신문 부산일보 경상일보 등 일간지 신춘문예로 등단한 희곡작가만 7명을 배출하는 등 작가 탄생의 요람으로 자리를 잡았다. 2010년 한국희곡작가협회 신춘문예 당선자 김란이씨, 2012년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과 CJ문화재단의 창작 뮤지컬 당선자 김경호씨를 뺀 숫자다. 서울연극협회의 희곡 창작 인큐베이팅 작품으로 선정돼 5월 서울연극제에서 공연될 이여진씨의 '트라우마 수리공'은 라푸푸서원 수업에서 썼던 작품이다. 이밖에도 많은 이들이 희곡 작가, 뮤지컬 작가, 연출가, 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다.
최원종씨가 라푸푸서원을 만든 것은 자신이 느낀 답답증 때문이다. 2002년 일간지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희곡 창작을 더 배우고 싶었지만, 배울 곳이 없었다.
"함께 공부하고 이야기를 나눌 선배와 동료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2007년까지 거의 무명작가로 지내면서 그게 늘 아쉬웠어요. 일단 사비를 털어 가건물 옥탑방에 라푸푸서원을 차려 일을 저질렀지만, 힘들어서 도망치고 싶은 적이 많았어요. 초창기에는 강사료도 못 드렸죠. 든든한 선배인 선욱현 차근호 두 분이 격려하고 도와준 덕분에 버틸 수 있었죠."
최씨는 라푸푸서원을 '극작 지망생과 선배 작가들의 공동체'라고 설명한다. 수강생들이 배우는 것은 극작법만이 아니다. 실제 현장에 갔을 때 부딪치는 문제들, 이를테면 희곡을 무대에 올릴 때 어떤 대사들이 지워지는지, 연출가와 충돌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작가료는 어떻게 받고 공연 계약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관한 선배들의 생생한 경험담은 다른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함께 공부하면서 자신이 쓴 글을 읽어주고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선배와 동료가 있다는 게 수강생들에게 가장 큰 힘이 되고 있다. 수업에서 쓴 작품을 독회와 워크숍 공연을 통해 점검하는 것도 작가 지망생들에게 무대 감각을 키워주는 좋은 장치가 되고 있다.
라푸푸라는 이름은 랄라라 푸푸푸 즐겁게 웃으면서 글을 쓰자고 지은 것이다.
"이제 막 희곡 창작을 시작한 작가들 앞에는 먹구름이 끼어 있지만, 그걸 뚫고 나가면 햇빛을 만날 수 있잖아요? 그들이 상처를 받거나 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연극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라푸푸서원의 목표라고 할 수 있죠."
라푸푸서원의 각 과정 마지막 수업은 각자 쓴 작품을 내놓고 탈고의 기쁨을 나누는 자리다. 아침 해가 뜰 때까지 밤새도록 하는 게 전통이 됐다. 수강생들은 과정이 끝난 뒤에도 동료로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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