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말이다. 입 다물고 따라와! 나한테 다 계획이 있어. 마음에 안 든다고? 그러면 부디 나보다 오래 살아서 다른 세상 만나. 그리고 그 때 내 무덤에 침을 뱉든 발길질을 하던 마음대로 해. 지금은 그냥 따라와. 편히 살고 싶으면.
멋있다. 남성 우월적 표현이 될지 모르겠지만 사나이답다. 그렇게 한 번 살아봤으면 하는 감동도 있다. 실제로 팬이 많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바로 이런 정신과 리더십이 ‘경제부흥’을 일으켰고 ‘한강의 기적’을 낳았다고 한다. 또 더 나아가 한 번 더 이러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공과를 따지고 싶지는 않다. 따지다보면 그것 자체가 시비가 될 수 있다. 그냥 빛도 있고 그림자도 있었다 해 두자. 어쨌든 시비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분명히 해 두자. 이런 정신과 리더십은 이제 박물관으로 보내야한다. 이 나라가 무척이나 어려웠을 때, 시장도 시민사회도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을 때, 그리고 주린 배 움켜잡고 열심히 일만 하면 되었을 때를 기억하게 하는 상징으로 걸어두자. 까까머리 버짐 핀 얼굴로 옥수수 빵 얻어먹던 추억이나, 경부고속도로 기공식 때 썼던 가위랑 삽이랑 함께.
이제는 다르다. 시민사회와 시장이 놀랍도록 성장했다. 성장이든 창조든 시장과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것이지 정부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도 그렇다. 열심히 일만 하면 되는 세상이 아니다. 더 이상 따라갈 모델도 없다. 우리 스스로 글로벌 혁신을 주도해야 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변화는 빠르고 깊다. 관료체제를 기반으로 한 정부가 쉽게 읽을 수 있는 변화가 아니다.
한마디로 정부의 역할이 바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과거의 역할이 온 식구 먹여 살리며 권위적으로 가정을 이끌었던 가부장적 가정의 아버지 역할이었다면, 지금은 자식들 뒷바라지 하며 넘어지면 일어서게 하고 다치면 약 발라주는 어머니의 역할이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의 정신과 리더십이 들어 설 자리가 없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어디선가 박물관으로 가야할 그 정신과 리더십의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옛 기억 속에 있던 ‘경제부흥’이라는 단어가 새로 나오고 ‘한강의 기적’도 새로 나왔다. 민주보다는 ‘위민’이, 자율보다는 ‘애국’이 강조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인사도 그렇다. 법대출신과 군 출신, 그리고 내무관료 출신이 앞으로 전진 배치되고 있다. 그 위에 일부 경제 엘리트와 과학 엘리트.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권위주의의 그림이다.
청와대의 모습도 그렇다. 경호실은 장관급으로 격상되고 정책기능은 축소되었다. 내각이 감당할 수 없는 대통령 과제를 전문적으로 조정할 정책실장 자리도 폐지되었다. 게다가 총리는 아무리 봐도 책임총리는 아닌 것 같다. 대통령이 부처를 직접 관장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제4공화국 말기, 대통령이 국정의 구석구석까지를 다 파악하고 있던 시절의 모습이다. 다른 큰 뜻이 있는데 잘못 읽은 것인가? 부디 그러기를 바란다.
리더십이 뭔가. 사심 없이 애국하면 그게 리더십 아니냐, 할 수 있다. 분명히 아니다. 애국심이야 대통령쯤 되면 없다가도 생긴다. 웬만큼 중요한 자리에 앉아도 태극기를 보면 가슴이 뛰고 애국가를 들으면 옴 몸에 전기가 온다. 하물며 대통령이야 어떻겠는가? 마음에 드는 소리는 아니겠지만, 어느 대통령이 되었건 대통령의 애국심은 의심할 이유도 감격할 이유도 없다.
문제는 애국심이 아니라 세상을 바로 보고 제대로 된 생각을 하느냐이다. 대통령의 권력과 권한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러한 이해 위에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과도 잘 지낼 수 있는 리더십을 정립하는 것도 그 중의 하나이다. 이런 이해와 노력이 없는 애국심은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 국가를 위태롭게 하고 국민을 불편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수위에서부터 정부조직법 개정문제에 이르기까지의 흐름을 보며 대통령의 리더십이 잘못되지 않았나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복고적이라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새겨들어 주었으면 한다.
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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