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도, 남동생도 못 들어옵니다. 밖에서 기다려주세요."
서울 신촌의 한 7층짜리 대형빌딩엔 금남(禁男)의 구역이 있다. 3층을 통째로 쓰는 H여성전용고시텔이다. 학생부터 직장인까지 여성만 40명이 산다. 24시간 관리인 상주, 출입문 전자자물쇠, 곳곳에 달린 폐쇄회로(CC)TV 등 안전이 최우선이다. 외부인, 특히 남성은 택배나 음식, 세탁물 배달 등 그 어떤 이유를 대도 들어갈 수 없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에도 오로지 여성만 받는 고시원이나 마치 대중목욕탕마냥 남녀 거주자의 출입을 철저히 분리한 원룸이 늘고 있다. 공인중개사 박선희(50)씨는 "노량진에만 최근 1년 새 여성전용고시원이 3, 4개 생겼다"고 귀띔했다.
서울시는 최근 구로구 천왕동에 여성전용 임대주택인 '여성안심주택'(연면적 2,963.36㎡)을 2014년까지 짓겠다고 발표했다. 무인택배보관소, 수도ㆍ전기ㆍ가스 원격검침, 24시간 비상벨 등 보안 강화와 보육시설(380㎡ 규모 어린이집)이 특징이다. 76세대(전용면적 14.18㎡)가 목표지만 95, 96세대 입주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노원구 공릉동엔 여대생 전용기숙사 '공릉희망하우징'(연면적 344㎡)이 있다. 올해 처음 14명을 뽑았는데 300명 넘게 지원했다. 싼 임대료(월 6만6,700~14만4,600원)도 장점이지만 침입자를 막는 안전 가스배관, 겹겹의 외부인 출입제한 장치, 비상벨과 CCTV 등이 성채처럼 갖춰져 있다.
남성이 들어갈 수 없는 금남의 집이 곳곳에 등장하고 있다. 서울 노량진 학원가, 신촌 등 대학가, 기업들이 밀집한 지하철역 부근에 점처럼 찍히더니 점차 그 수를 늘리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여성전용을 앞세운 임대주택과 기숙사 보급에 나서고 있다. 부산 등 지방대도시에도 더디지만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고시원 시공업체 코쿤하우스의 고종옥(54) 대표는 "출퇴근이 편한 대학교 앞, 역세권에 여성전용고시원 수요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전용은 보통 4, 5층 건물에 방 20~30개(6.6~9.9㎡)와 취사장, 세탁실 등을 갖춘 형태다. 내부 인테리어도 고급스럽고 깔끔하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여성전용 주거공간의 등장은 성범죄 증가 등 사회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노량진의 여성전용고시원 관리인 남모(29)씨는 "남녀 구역을 나누는 고시원도 있지만 워낙 범죄가 많다 보니 역시 불안하다고 느껴 여성전용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고시원생 김모(23)씨는 "남녀가 섞여 있는 하숙집과 달리 남자들 신경 쓸 필요가 없어 옷차림도 편하다"고 했다.
여성전용 주택 수요는 점점 늘어날 전망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0년 여성 1인 가구는 45만명으로 전체 1인 가구(85만명)의 절반을 넘는다. 서울시는 여성을 위한 소형 임대주택 2,000호 공급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본부장은 "여성의 활발한 사회진출과 1인 가구 증가로 임대료가 싸고 교통이 좋은 지역에 여성전용 주거시설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이들 시설이 아직은 여성 소비자 기대에 못 미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종로구 창신동의 한 여성전용고시원은 여성 세입자를 유치하지 못해 최근 남성을 받기 시작했다. 원룸 건축사업을 하는 박진철(35) 공간건축 대표는 "'여성만 사는 것'외에 특별한 서비스나 보안시스템을 제공하는 여성전용공간이 아직 드물다"며 "적극적으로 차별해야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분야"라고 설명했다. 이름만 여성전용이어선 곤란하단 얘기다.
투자 차원이라면 틈새시장 공략으로 접근해야 한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수도권 오피스텔과 원룸의 월 임대수익률 6%선이 무너진 상황이라 공항 주변의 여성승무원전용원룸, 신촌의 여대생(직장여성)전용오피스텔, 노량진의 여성수험생전용고시원 등 지역특성에 맞춰야 승산이 있다"고 조언했다. 조주현 건국대 교수도 "특화가 답"이라고 강조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김민호기자 kimono8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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