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만성신부전증 진단을 받고 장기이식 권유를 받았던 주철호(59ㆍ가명)씨. 진단을 받은 지 5년이 지났지만 주씨는 아직까지 이식수술을 받지 못했다. 생존자로부터 장기이식을 받을지 뇌사자로부터 이식을 받을지 망설이다가 지난해 4월에야 병원에 이식수술을 받겠다고 등록을 했기 때문이다. 만약 주씨가 5년 전 생존자 장기이식을 중개하는 민간단체인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등록을 했으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뇌사자의 신장을 이식 받으려면 평균 6년이 걸리지만, 운동본부를 통하면 신장 이식까지 평균 1년 반이 걸린다. 하지만 2011년 6월 법이 바뀌어 주씨와 같은 이식 대기자는 병원에만 장기이식을 요청할 수 있다. 현재 운동본부는 장기 기증자의 신청만 받을 수 있고, 법 개정 전 민간단체에 등록한 이식 대기자(현재 813명)를 연결해주는 것만 합법이다.
민간단체에서도 이식 대기자 등록을 받도록 하자는 장기이식법 개정안이 4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상정을 앞두면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생존자 장기기증 활성화를 위해 이 법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민간단체와 이를 허용하면 사실상 장기매매와 같은 불법이 성행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당국과 의료계가 맞서고 있다.
운동본부는 11일 "현행 법은 가족 이외에는 생존해 있는 사람이 장기를 기증할 수 없도록 한 것으로 한시라도 빨리 이식을 받아야 하는 환자들의 고통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난해 이뤄진 생존자 장기기증수술은 1,883건이지만 이중 가족 이외 타인(순수기증자)의 장기를 통한 이식수술은 17건에 불과했다. 이중 15건이 운동본부를 통해 이뤄졌고 병원에서는 2건만 이뤄졌다.
운동본부 관계자는 "순수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싶어도 병원에서는 생존자의 장기기증을 꺼려하는 분위기"라며 "생존자 장기기증을 활성화해야 현재 저조한 뇌사자 기증도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뇌사자 장기기증은 100만명 당 8명으로 미국(27명), 스페인(35명) 등에 비해 매우 저조하다.
그러나 보건당국과 의료계는 통제를 받지 않는 민간단체가 기증자와 환자의 정보를 모두 갖고 장기기증자와 환자를 연결시켜주는 것은 위험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2004년 박진탁 운동본부장(당시 고문)은 환자에게서 거액을 받고 앞서 등록한 신장 대기자보다 먼저 이식을 받을 수 있도록 순서를 바꿔준 혐의로 실형을 살기도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가족간에 혈액형이 달라도 이식을 할 수 있도록 기술이 발달해 굳이 타인의 생존자 기증을 활성화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뇌사자 기증을 활성화하는 것이 정책의 방향"이라고 말했다. 김명희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 연구부장(보건학 박사)는 "생존자 장기기증자는 건강하게 살지 못할 확률도 있고 수술 이후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사례가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며 "민간단체의 역할은 자발적 생존 기증자를 발굴하는데 한정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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