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나는 한국 독자의 관심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한국을 위해서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것을 찾고자 한다.”
슬로베니아 출신의 세계적인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지난해 2월 한국일보 기획시리즈 ‘위기의 시대 지성과의 대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이 약속을 1년 만에 지켰다.
경희대는 지젝을 외국어대학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에미넌트 스칼러’에 임용하기로 하고, 통보절차를 마쳤다고 11일 발표했다. 이에 따라 지젝은 7월 1일부터 경희대 교직원으로 임용돼 경희대 소속으로 저술활동을 하고 이택광 영미문화부 교수와 공동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에미넌트 스칼러는 석좌교수와 유사한 개념으로 경희대가 세계적인 수준의 학자 또는 실천가를 임용해 1년에 1개월 이상 한국에 체류하며 학술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한 만든 제도다.
이택광 교수는 “지젝의 최근 화두인 ‘자본주의 이후 정치사상’이란 큰 틀에서 아시아 정치ㆍ사회 연구를 함께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9월 한국에서 ‘자본주의ㆍ이데올로기ㆍ기술’을 주제로 대중 강연을 하는 한편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와 ‘공산주의 이념’ 국제 학술대회도 국내에서 열 예정이다. 지젝과 바디우는 영국 런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독일 베를린, 미국 뉴욕에서 공동 학술대회를 연 바 있다.
지젝은 마르크스의 유물론과 헤겔의 관념론,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독특하게 해석하며 1990년대 이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영화, 드라마, SF소설 등 철학과 문화비평을 접목한 글로 대중적 인기도 높다. 1990년 유고연방 해체 후 슬로베니아의 첫 번째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9ㆍ11테러, 이라크전쟁, 금융위기 등 현실정치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2년 전 월가 시위에도 참여하는 등 행동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왔다. 독창적인 관점과 직설적인 화법으로 인해 학계 비판도 만만치 않지만, 오히려 이는 지젝의 영향력을 방증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지젝은 지난해 기획 ‘위기의 시대 지성과의 대화’에서 이 교수와 인터뷰후 6월 경희대 초청으로 방한해 3차례 공개강연을 가진 바 있다. 당시 강연에 청강생 수천 명이 몰리자 한국의 인문학 열풍에 놀랐다고 한다.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와 경기 파주 임진각, 비무장지대를 찾는 등 한국의 독특한 정치현실에도 남다른 인상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이 교수는 “지젝은 아시아의 정세 변화에 관심이 많다”며 “특히 한국 등을 중심으로 연대를 모색하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7월 방한 때는 전문가를 상대로 했던 강연을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교외활동을 넓히는 등 대중과 접점을 넓힐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희대는 일단 1년 계약 이후 연속 계약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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