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 미군이 탈레반과 전쟁하는 것은 아프간을 점령하기 위해 탈레반과 짜고 하는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양국 관계가 급랭하고 있다. 카르자이 대통령의 발언은 척 헤이글 신임 미국 국방장관이 아프간을 처음 방문한 가운데 나왔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10일 TV 연설에서 "어제 폭탄테러는 탈레반이 힘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며 "탈레반은 미국을 위해 그렇게 한 것으로 2014년 예정된 미군 철수 이후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을 증폭시켜 아프간 영토의 미군 주둔을 연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9일 수도 카불 시내와 동부 코스트주에서 탈레반은 두차례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 민간인 등 19명이 숨졌다.
카르자이는 "미국은 탈레반을 더는 적으로 간주하지 않고, 2014년 이후 철군도 원하지 않는다"며 "미국은 매일 탈레반 지도자들과 협상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조지프 던포드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은 즉각 "탈레반과 대화가 진행되는 것은 없다"고 부인했다. 아프간을 방문 중인 헤이글 국방장관은 카르자이의 발언 이후 예정된 공동 기자회견을 취소했다. 표면적으로는 전날 폭탄테러로 안전문제가 제기됐기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카르자이의 발언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카르자이와 헤이글은 이후 비공개 만찬을 가졌다. 헤이글은 "나도 한때 정치인이었기 때문에 각국의 지도자들이 처한 압박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카르자이가 지지기반을 넓힐 목적으로 미국과 탈레반을 싸잡아 비난했다는 것이다.
미국이 9ㆍ11 테러 배후인 알 카에다를 지원하는 아프간 탈레반을 소탕하기 위해 시작된 아프간 전쟁은 13년째로 들어서면서 미군이 개입한 역대 최장 해외전쟁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로 인해 피해가 급증하며 이슬람권의 반미정서도 고조되고 있다.
카르자이는 이날 연설에서 미국이 운영하는 교도소에서의 아프간 대학생 고문 사건에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또 미군 등이 아프간 정부 승인 없이 대학에 진입하는 것도 금지했다.
던포드 사령관은 "미국은 아프간 내 불안을 조장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아프간 정부와는 어려움을 이겨낼 만큼 신뢰가 있으며, 동맹이 깨진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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