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리졸브 한미 연합훈련이 어제 시작됐다. 해마다 하는 통상적 훈련이지만 북한은 전에 없이 강경한 협박으로 맞서고 있다. 늘 떠드는 '서울 불바다' 협박을 되풀이 하는 것은 물론 "워싱턴도 핵미사일로 선제공격 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은 상태다.
물론 제 가진 힘에 비해 터무니없이 과장된 협박이다. 그러나 연평도 포격과 같은 국지 도발을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는 전문가들의 우려다. 그러니 마음이 편할 수 없다. 2010년 연평도가 마치 전쟁영화 장면처럼 불타던 처참한 모습이 새삼 기억난다.
미국을 향한 '선제 핵 타격' 위협은 안보리 제재 결의에 앞서 나왔다. 어떤 압박에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안팎에 외치는 효과를 노렸다. 그러나 북한이 실제 그럴 능력이 있다고 믿는 건 북한 주민들뿐일 것이다. 북한 지도부 스스로 아직은 힘이 부친다는 걸 모를 리 없다.
지난해 12월 위성 발사에 성공한 북한 은하3호 로켓은 이론상 미 캘리포니아 등 태평양 쪽 서해안까지 미사일을 날려 보낼 수 있다. 그러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위성 로켓과 달리 대기권으로 다시 진입해야 한다. 그러자면 대기권 재진입을 견딜만한 재질로 미사일을 만들어야 하고 핵탄두도 소형화해야 한다. 게다가 미사일을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등 대도시 표적까지 정확히 유도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로버트 게이츠 전 미 국방장관은 북한이 이르면 2015년쯤 미국을 공격할 ICBM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버웰 벨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미 서해안에 도달할 미사일 개발에 5~7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은하3호 로켓을 기반으로 ICBM을 만들더라도 '선제 핵 타격'은 거의 불가능하다. 액체연료를 쓰는 은하3호 로켓은 발사 직전 연료 주입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이를 뻔히 지켜볼 미국이 손 놓고 당할 리 만무하다. 특히 선제 핵 공격은 대량 보복을 불러 북한에 자살행위가 될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서울 불바다' 협박이 실현 불가능한 이치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 보면 북한에 남는 선택은 애초부터 연평도 포격과 같은 국지 도발이다. 북한의 김정은이 키리졸브 훈련에 맞서 '전투동원태세'를 갖추고 연평도를 마주보는 장재도 해안포 기지를 시찰한 것은 우리의 '연평도 트라우마(trauma)'를 덧들이려는 의도로 비친다.
서해 연평도를 무차별 포격한 북한의 도발은 장병과 민간인 희생만으로 가늠할 수 없는 충격과 상처를 남겼다. 북한의 거듭된 도발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한 평화를 누리고 있다는 막연한 믿음을 깨뜨리고 그것이 '위장된 평화(false peace)'였다는 각성을 안겼다. 그 고통스러운 기억과 불안은 치유하기 어려운 정신적 외상(外傷), 트라우마로 남았다.
북한이 애초 연평도 포격으로 노린 것도 바로 그것일 것이다. 과거 같으면 '으레 그러려니' 하고 들어 넘길 북한의 황당한 협박에도 잔뜩 긴장하고 불안해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됐다. 또 대응 실패 책임을 둘러싸고 우리끼리 치열하게 다투는 빌미가 됐다. 이런 상황과 처지는 지금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북한의 전에 없는 호언장담은 장거리로켓 발사와 핵실험에 성공한 자신감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미국의 봉쇄 해제를 바라는 절박함과 함께 김정은 체제 확립을 꾀하는 대내용 목적도 클 것이다. 어떻든 우리에게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북한의 무모한 협박이 새 정부의 의지를 시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마당에 가장 경계할 것은 우리 사회가 허무한 자중지란(自中之亂)에 빠지는 것이다. 이번 위기가 어떻게 지나가든 정부의 안보 라인 구성이 지연된 책임 등을 놓고 한바탕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걸 막으려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 결연한 의지를 거듭 과시해야 한다. 지금은 그게 안팎으로 최선의 방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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