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도 상대방과의 대화이자 소통이죠.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행복합니다.”
20년 이상 일본어 통역과 강의 봉사를 해온 정양석(80)씨는 이렇게 말했다.팔순이 믿기지 않을 만큼 목소리에 힘이 넘쳤고 열정적이었다. 11일 서울 서초구 방배4동 주민센터 2층 ‘일본어 강의실’에서 만난 그는 “봉사라고는 하지만 일본어를 통해 나 역시 삶의 활력을 얻고 있다”며 “통역으로 ‘민간 외교관’이라는 말까지 들으니 얼마나 보람된 일인가”라고 말했다.
정씨는 주민센터에서 20여년 간 일본어 강의를 하고 있다. 거쳐간 학생만 수백 명이다. 20대부터 70대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 2004년부터는 NGO(비정부기구) BBB코리아에서 통역 봉사도 하고 있다. 통역을 원하는 사람이 이곳에 전화를 걸면 24시간 대기중인 통역사들의 휴대전화로 연결돼 무료로 통역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정씨도 4,000여명의 통역사 중 한 명. “일본어 통역 봉사자를 모집한다는 말에 직접 지원했죠. 통역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였어요. 전화상으로 통역을 하지만 마음과 마음이 오가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가 일본어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은 건 1958년 전남 순천에서 서울로 상경해서다. 신문에 난 기상청(당시 국립중앙관상대) 사원 공고를 본 게 시작이었다. 당시 700여명의 지원자 중 10명의 합격자에 포함됐던 정씨는 1년간의 혹독한 교육을 버티며 4명의 정식 사원이 될 수 있었다. 그때 교육 받았던 기상학, 천문학 등의 서적이 일본어로 된 원서여서 독학은 필수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4년간 근무하다 군입대를 했고, 군에서도 기상 관련 업무를 하면서 일본어를 끊을 수 없었다. 이런 경력 덕분에 정부 기관에서 한·일 교류 관련 업무를 맡아 30년간 공직 생활을 이어갔다. 80년대 초반 공직에서 물러난 뒤로는 봉사 활동에 아예 전념하고 있다. 그는 “전화 통역 봉사도 5~6년간 서울시에서 운영한 청소년 전화상담 봉사와 88서울올림픽 통역 봉사 경험이 토대가 됐다”고 했다.
통역 봉사로 세상의 따뜻한 인심도 경험했다. 몇 해전 여권을 잃어버렸다는 한 일본인의 전화를 받고 직접 경찰서로 연락, 경찰이 여권을 찾아준 일도 있다. “나이가 많다고 하고 싶은 일을 못한다면 병이 나는 법이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열정을 불태우면 건강도 좋아지고 보람까지 얻는 답니다.”
강은영기자 kis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