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단위농협에서 5년 넘게 예금 업무를 담당한 A대리는 2006~11년 사이 5년간이나 고객 돈 26억원을 횡령하다 최근에야 덜미를 잡혔다. 자신을 믿고 신분증, 인감까지 맡긴 노인 고객들의 통장을 턴 것이다. 그는 가로챈 돈으로 명품을 사고, 가족들의 생활비까지 대 준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금융사 직원의 비리로 인한 사고액수는 감소했지만, 건수는 되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내부 감사 등은 갈수록 강화되고 있지만, 고객과 친하거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직원들의 '한 탕'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은 특히 사고가 잦은 상호금융사를 집중 감시키로 했다.
1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금융권 전체 사고는 184건에 747억원에 달했다. 2011년(179건에 1,240억원)보다 금액은 줄었지만 대신 서민금융사의 소액 사건이 부쩍 늘어났다. 전체 사고 중 중소서민금융사(304억원ㆍ75건) 비중(금액 기준)은 40.8%나 됐고 비교적 저지르기 쉬운 횡령ㆍ유용 사건이 56.4%(422억원ㆍ142건)를 차지했다.
이처럼 금융권 사고가 중소금융사에 몰리고 초보적 유형의 비중이 높아진 것은, 자체 감시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진 대형금융사와 달리 작은 금융사 일수록 관리가 소홀하기 때문이라는 게 당국의 분석이다. 상호금융조합의 경우 횡령 사고의 70%가 동일 업무를 5년 이상 장기간 맡은 직원에 의해 저질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가 형식적 수준에 머물다 보니 주요 증서ㆍ인장 관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증권사에서 주로 발생하는 사고는 직원이 투자손실을 메우기 위해 고객 예탁금을 횡령하는 경우다. B 증권사 직원은 무단 발급한 고객 증권카드와 평소 고객의 주문을 처리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비밀번호를 이용해 16차례에 걸쳐 16억원을 횡령해오다 적발됐다.
신협과 은행 등에서는 대출 관련 비리가 많았다. C 신협 직원은 브로커와 짜고 부동산 담보 감정가를 부풀려 47억원을 초과대출 받았다. D은행 지점은 위조 표지어음에 속아 이를 담보로 48억원을 빌려주기도 했다.
금감원은 "여신심사와 실행 등 반드시 담당자가 분리돼야 할 업무간에 구분이 명확하지 않거나 사기 유형에 대한 대비가 허술한 금융사들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은 조만간 사고가 빈발ㆍ급증하거나 내부통제가 취약한 금융사를 상대로 특별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미비점이 발견되면 양해각서(MOU)를 맺어 개선에 나설 방침이다. 또 인력구조상 특정인이 같은 업무를 오랫동안 맡거나 직무가 제대로 분리되지 않는 등 내부통제가 취약한 상호금융조합은 금융사고 방지대책을 별도로 마련하기로 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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