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두 분 모두 고민이 깊으셨을 걸로 압니다. 새정부 출범은 어수선하고, 한반도를 뒤덮은 전쟁공포가 그 꼭지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와중에 이런 글 드리게 된 점, 여러 모로 착잡합니다.
먼저 안 교수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석 달만의 귀국, 환영합니다. 건강한 모습 뵈니 참 좋더군요. 박근혜 정부 출범과정에서의 여야 정치력 부재와 구태반복을 목격하면서 '안철수'로 대변되던 새정치 열망이 다시금 꿈틀대고 있습니다. 그런데 꼭 서울 노원병 선거구여야 할까요? '부당한 판결 때문에 보선을 치르게 됐다'고들 여기는 사람이 많은 그 노원에 하필….
새정치의 상징적 차원에서 노원을 택하셨다고 전해집니다. 노원지역에 계시는 분들, 행여 오해는 마십시오 마는, 저는 그 곳은 새정치 차원이건, 정치무대에서 서울이 갖는 상징성 차원이건 간에, 거리가 좀 있다고 봅니다. 예컨데 서울 종로나 강남벨트처럼 '특별한' 정치적 의미나 상징성을 얻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아시다시피 그 지역은 전통적으로 야당세가 강했던 곳 입니다.
'안기부 X파일사건'에 대한 사법부판결로 보선이 치러지게 됐으므로 노원 보선은 사법부 판결의 정당성 여부를 묻는 선거입니다. X파일사건의 문제점을 제기했던 인사 중 누군가가 나서 유권자에게 직접 묻는 게 옳다고 봅니다. 교수님이 거기에 부적합하다는 뜻은 아니지만, 자칫 '노회찬 빈 자리'를 통해 정치를 재개하려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교수님의 새정치 대장정이 일부의 그런 오해를 불식시키지 못한 채 출발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봅니다. 이번에 보선이 치러지는 세 선거구 모두에 안철수그룹에서 후보를 내고, 교수님은 부산으로 출마하되, 세 군데를 다 돌며 "새정치를 위해 우리 후보들을 지원해달라"고 호소하는 게 정치개혁 열망 계층의 '정치세력화'에도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이 연고지이기도 한 부산에서 여당 거물 김무성 전 의원과 맞붙어 지역구도 타파에 도전하는게 새정치에 맞지 않을까요? 교수님께서는 "한나라당의 정치적 확장을 반대한다"고 수 차례 공언한 바 있습니다.
노회찬 전 의원께도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부인께서 오랫 동안 민주와 인권을 위해서 일해오셨다는 점,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원지역이 노 전 의원님 일가의 봉지(封地)는 아니잖습니까? 부친이나 남편의 뒤를 이어 출마해서 당선된 사례, 물론 몇 번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엄밀히 말해서 '세습'입니다. 세습은 봉건적이고 전 근대적입니다.
당선가능성을 놓고 보더라도, 문제는 간단치 않습니다. 후보단일화는 지난해 4ㆍ11총선 직후 터진 진보당 내부의 경선부정사태로 이미 그 정치적 의미나 위력을 훼손당했습니다. '특정진영 반대 단일화'가 과연 전가의 보도인지에 대해서도 반성 차원의 논의가 시작됐습니다.
들리는 말로는 노원 출마를 두고 두 분 사이에 "상의와 양해가 있었다", "아니다…" 아름답지 않은 말들이 오가던데, 발언의 진실게임 양상으로 간다면, 정말이지 큰 실망입니다.
두 분의 결정으로 노원은 이번 재ㆍ보선의 핵으로 부상했고, 덕분에 이번 4ㆍ24 보선은 '미니 총선'으로 체급이 올라갔습니다. 그러기에 더더욱 노원의 선거결과는 정치권 전반에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결국 또다시 '안철수'와 '단일화'라는, 지난 1년 여 정치권을 지배했던 단어들로 되돌아 갈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후보단일화는 여러 면에서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믿고 싶지 않지만, '두 번 씩이나 양보했으니 이번에는 양보받는 게 맞다'거나, '진보정의당 김지선후보가 아내인 것은 맞지만 정치적 세습은 아니다'는 얘기들은, 말 그대로 '일각의 억측'이길 바랍니다.
저는 이번 선거에서 특정 당 후보가 돼야 한다거나,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정치개혁'의 관점에서, 두 분의 이번 결정은 명분이나 실익 모두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새정치를 향한 긴 안목의 통찰력을 기대합니다. 아직 시간은 남아있습니다.
이강윤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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