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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선생님은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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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선생님은 힘들어

입력
2013.03.11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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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기르고 가르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부모노릇 해본 사람들은 다 안다. 어떤 엄마는 “착하면 착한대로, 말 안 들으면 안 듣는 대로, 지들이 다 컸다고 생각해도 엄마는 아이들이 왜 그렇게 늘 가여운지... 세상에 어렵고도 슬프고도 엄중한 일은 부모노릇이 아닌가 합니다.”라고 내 글에 댓글을 달았다.

부모노릇만 어려운가? 선생님노릇도 정말 어렵다. “선생의 똥은 개도 안 먹는다.”, “초학 훈장의 똥은 개도 안 먹는다.” 이런 말은 선생님들이 아이들 가르치느라 얼마나 속을 썩는지 잘 알려주는 속담이다. 어떤 교사는 이 말을 “선생이 워낙 신경을 많이 쓰고 늘 긴장하고 살기 때문에 그 똥에 양분이 없고 되레 독소가 많기 때문”이라고 아주 ‘과학적으로’ 설명했다.

올해 여고에서 남녀공학으로 달라진 데다 계열도 실업고에서 인문고로 바뀐 학교가 있다. 그런 학교가 신학기를 맞았으니 선생님들이 얼마나 바쁘고 힘이 들까. 특히 여학생들만 상대하던 여교사들은 드세고 말 안 듣는 머스마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걱정이 태산 같았다고 한다. 중학교 성적이 좋지 않은 아이들도 많으니 학업은 물론 생활지도가 어려울 것은 뻔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려움만 있는 건 아니었다. 고1 남학생반 담임을 맡은 여교사 A는 여자애들을 가르칠 때보다 오히려 재미있는 일이 많아 자주 웃게 된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왜 그리도 산만한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학업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는 아이들이 태반인데, 인물은 어찌 그렇게 다 잘 생기고 귀여운지 ‘연예인반’이라는 별명이 벌써 붙었다고 한다. 실제로 예체능 지망자들이 많았다.

그 중 한 녀석은 마이크만 보면 환장을 하는데, 선생님이 자리에 없으면 마이크에 입을 갖다 대고 푹푹뿍팍 푸부북, 쿠타타타키파페, 롤링 스네어 등으로 온갖 비트박스 소리를 낸다고 한다. 청소시간에 컴퓨터실 무선마이크를 보고는 눈이 뒤집혀 신나게 들고 다니며 갖고 놀았다. 그런데 그 녀석의 장래 희망은 비트박스 연예인이 아니라 요리사라고 한다. 앞으로 요리하면서 침깨나 튀기겠다. 또 한 녀석은 집에 엄연히 엄마가 있는데도 A교사만 보면 멀리서 “엄마, 엄마!”하고 소리쳐 불러 혼이 나곤 한다.

이런 아이들이 많으니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하는 건 별 효과가 없다. 공부스트레스를 주기보다 우선 즐거운 학급을 만들어 학교에 빠지지 않고 다니게 하고, 차근차근 진로지도를 하면서 열심히 공부하도록 유도해야겠다는 게 A교사가 내린 결론이었다.

아들만 둘인 A교사는 늘 말도 하지 않고 뚱한 녀석들만 보고 살다가 전혀 유형이 다른 남자애들을 만나 처음엔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서슴없이 교무실에 들어와 선생님 책상의 떡을 먹어도 되느냐고 물어서 받아가고, 과자라도 하나 주면 입이 찢어져라 좋아한다. 묻지도 않았는데 “쟤는 집에서 돈 훔쳐 자전거 샀대요.”하고 이르는 녀석도 있다. 꼭 무슨 ‘봉숭아학당’ 이나 개그콘서트의 ‘멘붕스쿨’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웃음을 참기 어려울 만큼 재미가 있고 다 귀엽고 이뻐 보인다고 한다.

담임 외에도 맡은 일이 많아 너무 힘이 든 A교사가 담임을 그만두겠다고 하자 아이들은 소리소리 지르며 반대했다. 어떤 녀석은 교무실까지 따라오면서 “(담임 그만두시면) 나 자퇴할 거야!”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다른 학급의 학생 하나는 담배 냄새가 나 A교사에게 적발되자 조금도 어려워하는 기색 없이 “아, 모처럼 등교 전에 한 대 때렸습니다. 앞으로 안 피우겠습니다.” 하고 큰소리로 대답하고 가버렸다고 한다.

사람을 만들어 가는 일은 어렵고 고달프면서도 재미있고 보람 있는 일이다. 교육자로서의 사명감이 그런 일을 충실히 해나가게 만드는 바탕이다. 그 과정에는 당연히 즐거운 일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을 것이다.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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