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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살던 보금자리가 한 순간에 잿더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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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살던 보금자리가 한 순간에 잿더미로…"

입력
2013.03.10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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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고온 현상을 보인 지난 주말(9~10일)동안 경북 포항과 울산 등 전국이 잇따른 산불로 몸살을 앓았다. 9일 하루에만 21건의 산불로 서울 여의도 면적의 절반에 육박하는 110㏊가 잿더미로 변했다. 불장난과 담뱃불 실화, 벌통소독 등 부주의로 발생한 주말 산불은 강한 바람을 타고 사망자 1명과 부상자 17명, 이재민 150여명을 내고 주택 79채를 태우는 등 큰 재산피해를 입혔다.

지난 9일 오후 3시44분쯤 포항시 북구 용흥동 용흥초 뒤 탑산에서 중학생 A(12)군이 1회용 라이터로 나뭇잎에 불장난을 하다 산불로 크게 번져 17시간 만인 10일 오전 9시쯤 5㏊를 태우고 진화됐다. 이 불로 거동이 불편한 안모(80)씨가 숨지고 홍모(74ㆍ여)씨가 입원, 치료를 받는 등 14명이 부상했다. 또 주택과 아파트 56채가 탔고 48세대 117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포항 도심에서 20년 만에 발생한 대형 산불로 하마터면 큰 인명피해가 날 뻔 했다. 34년동안 살던 집이 한 순간 잿더미가 된 공무원 백영석(47)씨는 이날 화재로 지체장애인 딸(24)을 잃을 뻔 했다. 9일 오후 4시10분쯤 화재소식을 듣고 집으로 달려간 백씨는 물에 적신 담요 한 장을 들고 연기와 불길로 뒤덮인 방에서 잠자던 딸을 들쳐 업고 뛰어나와 위기를 모면했다. 백씨는 "네 식구가 살아온 보금자리가 일순간 홀랑 타버렸지만 딸이 무사해 천만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날 불은 20층 아파트 꼭대기 층에도 옮겨 붙었다. 포항시 용흥동 대동우방아파트 109동 20층에 사는 B씨는 산불 발생 소식을 듣고 아파트 창문을 모두 걸어 잠근 후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689 세대가 입주한 이 아파트단지 안쪽에 위치한 높이 60m의 꼭대기 층에 불씨가 날아들어 내부 170여㎡ 를 모두 태웠다. 소방차가 출동했지만 워낙 고층이어서 고가사다리는 사용하지도 못하고 아파트 방화 호스로 진화하느라 애를 먹었다. B씨는 "왕복4차선 도로를 넘어온 불씨가 어떻게 아파트단지 안쪽 꼭대기에 있는 우리 집만 뚫고 들어 왔는 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경찰은 이날 불을 낸 후 119에 신고하고 도망간 A군을 붙잡아 조사 중이다. 경찰은 고의적 방화 여부가 드러날 경우 형사미성년자인 A군을 소년부에 송치할 예정이다.

또 이날 포항시 남구에서도 화재가 발생했다. 9일 오후 포항 남구 연일읍 우복리에서 산불이 발생, 3㏊를 태우고 10일 오전 진화됐다. 소방당국은 김모(68)씨가 벌통 소독을 하다 불씨가 산으로 옮겨 붙어 산불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울산에서도 원인을 알 수 없는 대형 산불로 큰 피해가 발생했다. 9일 오후 8시40분쯤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과 상북면 일대에서 산불이 발생, 12개 마을 주민 1,800명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을 빚었다.

10일 오후에서야 겨우 진화된 이번 화재로 언양읍 주민 김모(45·여)씨가 화상을 입었고, 서모(59)씨가 대피하던 중 허리를 다쳤다. 또 산림 50㏊, 주택 등 건물 23채, 가축 500여 마리를 집어 삼켰다.

상북면 향산리 능산마을에서 처음 발생한 불은 강풍을 타고 인근 화장산 등으로 삽시간에 확대, 반경 5㎞ 안 인근 마을로 번졌다. 언양읍 주민 박모(72ㆍ여)씨는 "새벽에 바깥이 소란스러워 나와보니 집 앞 들판에 불길이 번지고 있어, 휠체어를 탄 채 황급히 대피했다"고 말했다.

일부 주민들은 집과 가축을 보호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호스로 물을 뿌리며 진화에 나섰으나 허사였다. 다행히 주민 수백명은 관공서에서 마련한 안전지대로 몸을 피해 인명피해는 더 커지지 않았다. 소방 관계자는 "울산에는 지난 2일부터 건조주의보가 발효됐고, 9일 오후에는 강풍주의보도 발령된 상황에서 야간에 불이나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산불은 제주에서도 발생했다. 9일 오전 11시53분쯤 제주시 월평동 첨단과학단지 남동쪽 목장에서 화재가 발생, 삼나무 조림지 1㏊와 야초지, 공동묘지 등 8㏊가 불에 탔다. 경찰은 목축업을 하는 이모(51)씨가 쓰레기를 태우다 불이 났다고 확인됨에 따라 정확한 화인을 조사 중이다.

산림청 관계자는 "따뜻한 날씨로 야외 소각활동이 늘어나면서 화재도 많이 발생했지만 산불확산의 주범은 강풍"이라며 "소방헬기를 타고 측정한 풍속이 초속 16m나 될 정도로 셌다"고 말했다.

포항=이정훈기자 jhlee01@hk.co.kr

울산=강성명기자 sm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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