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1일)은 북한이 정전협정을 백지화하고 남북간 불가침 합의도 전면 무효화한다는 날이다. 한미의 연례 키리졸브 훈련 개시일에 맞춘 택일이다. 정전협정 백지화 목적은 "임의의 시기, 임의의 대상에 대해 제한 없이 마음먹은 대로 정밀타격을 가하고 민족 숙원인 조국통일 대업을 앞당기자는 것"(5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대변인 성명)이다. 군사적으로 남북은 언제 어디서든 무력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초긴장 상태에 놓인 셈이다.
■ 그러나 우리사회의 위협 체감지수는 그리 높지 않다. 만성화한 안보위협에 무감각해진 탓도 있지만 북 위협에 늘 과장과 허세가 많았기 때문이다. 1994년 3월 남북실무접촉 북측 대표의 서울 불바다 발언이 원조격인 대남 위협은 이명박 정부 들어 수위가 높아지고 횟수도 빈번해졌다. 2010년 1월 일부 언론에 보도된 정부의 북한 급변사태 대비계획에 대한 국방위원회 대변인의 보복 성전 성명이 대표적이다. "청와대를 포함하여 남조선 당국자들의 본거지를 송두리째 날려 보내기 위한 거족적인 보복성전이 개시될 것"이라고 했다.
■ 대북 삐라살포 지점이나 자신들의 최고 존엄을 모독한 언론사 등에 대해"우리 식의 무자비한 성전으로" 보복 타격을 하겠다고도 했다. 몇 언론사에 대해서는 사격좌표를 공개하며 겁을 주기도 했다. 이제는 "다종화된 우리 식의 정밀 핵타격 수단으로 서울만이 아니라 워싱턴까지 불바다로 만들 것"이라고 한다. 장거리로켓 발사 성공과 3차 핵실험을 십분 활용한 위협이지만 현실성이 떨어지는 공상 수준의 과장이다.
■ "침략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단다면 그 순간부터 당신들의 시간은 운명의 분초를 다투는 가장 고달픈 시간으로 흐르게 될 것"(2월 23일,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 대표 키리졸브 훈련 항의 전화통지문). 북 위협에는 가끔 이런 '문학적 표현'도 등장해 실소를 자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말이 씨가 된다고 한다. "김정은 정권은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국방부 김민석 대변인) 등과 같은 위협적 언사들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위협의 수사(修辭)에도 절제가 필요하다.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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