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법률가 선정 '인권돋움이賞'우리가 떼쓰는 것 아니라고 확인전태일에 대학생 친구 필요하듯 지금 노동자에 겐 법조인이 필요●혼자서는 내려갈 수 없는 이유내 개인에 국한되는 판결 아냐이 판례 근거로 타업체 적용 불구 현대차엔 적용 안되니 납득안돼●현대차, 대승적 결단 내렸으면비정규직 노조와 교섭도 거부정규직 전환, 불가능 아니라는 것… 얼마전 이마트 사례가 보여줘
바람 거센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옆 50미터 송전탑. 절반쯤 높이에 자리한 가로 6미터 세로 1.8미터의 좁은 공간에는 성인 남자가 대각선으로 겨우 발 뻗고 누울 수 있는 비닐 천막 두개가 있다. 이곳에서 작년 10월 17일부터 146일째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해고노동자인 최병승(38)씨가 현대자동차 노조 비정규직 지회 사무장 천의봉(32)씨와 살고 있다. 사내하청이라는 이름으로 고용되는 비정규직은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따라 근무기간이 2년 넘으면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하는데 회사는 지키지 않았고 반발하는 비정규직 노조원을 2005년 해고했다. 최씨는 그때 해고된 101명 중 하나로 7년간의 법률투쟁 끝에 작년 2월에 '현대자동차의 행위는 불법파견이므로 최병승씨는 2004년 3월 13일부터 정규직'이라는 대법원 판결을 받아냈다. 5월에는 중앙노동위에서 복직시키라는 명령도 내렸다. 그러나 현대자동차는 최씨를 복직시키지 않았고 비정규직 노조와의 교섭마저 단절해 버렸다. 두 사람이 송전탑으로 올라간 지 한 달 넘어서 최씨만 정규직으로 복직발령냈으나 그는 응하지 않았다. 비정규직 전체가 정당한 대접을 받을 때에야 고공농성을 풀겠다는 것. 지난달 말에는 사법연수원과 로스쿨의 인권법학회 소속 예비법조인들이 최씨를 '인권돋움이'로 선정했다. 왜 예비법조인들은 그의 고공농성이 인간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라고 보는지, 왜 그는 혼자서는 내려올 수 없는지 들어 보았다.
-언제부터 노동을 하셨어요?
"IMF가 터지고 아버지가 희망퇴직을 하셨어요. 누나는 대학 나와서 직장 다니고 밑으로 여동생 둘이 고등학교 다닐 때인데 저는 대학교를 한 학기만 다니다 그만두었거든요. 굳이 대학 나와야 하나 싶었고 공부하는 것 싫어했어요.(웃음) 빨리 일해서 돈 벌겠다고 했더니 부모님은 말리셨지요. 아버지가 두산의 맥아연구원이었으니까 풍족하지는 않아도 부족하지는 않게 자랐거든요. 할머니가, 나쁜 것도 아니니 하고 싶은 대로 두자고 편을 드셔서 공장일을 하게 됐어요. 작은 데 다니다가 2000년에 목포에 있는 삼호중공업 직업훈련소 들어가서 사내하청으로 1년 정도 일했어요. 용접을 배워서 '대모도'(조수)도 하고 '시다(보조)'도 하고 자격증도 땄어요. 회사가 있는 목포서 혼자 지냈는데 돈은 좀 됐지만 혼자서 밥해먹고 매일 출근하는 것도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만 뒀어요. 선배들이 자동차 일을 해 보면 어떻겠느냐, 울산에는 중공업도 있고 자동차도 있으니 일자리도 많다고 해서 2001년 겨울에 무작정 울산으로 왔어요."
-왜 현대자동차에 입사했어요?
"그때는 교차로나 벼룩시장 이런 데에 사내하청 광고가 많이 났어요. 당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시급이 2,510원이었는데 상여금이 있었어요. 현대중공업은 시급은 4,000인가 4,500원인데 상여금이 없고요. 돈은 적고 일은 힘드니까 사람들이 금새 관뒀어요. 제가 들어갈 때도 4명이 같이 갔는데 한 분은 일한 지 1시간 만에 가시고 한 분은 점심밥 드시고 가셨어요. 처음 한 일이 베르나 키박스(자동차 열쇠 들어가는 상자) 붙이는 일이었어요. 공구 잡고 나사 조이는 일이라 쉽다면 쉽고 차량마다 색깔과 부품이 다르니까 식별하는 건 조금 어렵고요. 컨베이어로 차량이 계속 흘러가는데 맞춰서 작업하는 게 제일 힘들어요. 평지와는 다르니까 멀미도 나고 밖에서 맞는 부품 찾아서 들고 컨베이어로 왔다 갔다 하다 보면 떠밀려도 가고요. 그 후 문짝도 달고 에어클리너도 달아 봤어요.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요."
-자동차 공장의 업무 중에 고도로 전문화된 기능이 따로 있나요?
"작업마다 특성이 있어요. 제가 보기엔 도장(塗裝)일이 제일 전문적인 것 같던데. 스프레이로 두께 맞춰서 뿌려야 하니까요. 엔진 쪽 몇 가지 작업도 배우는 데 오래 걸려요. 그걸 빼면 나쁘고 좋은 차이만 있어요."
-비정규직이라고 쉽고 단순한 일을 맡는 것은 아니고 정규직과 똑같이 배분되는 거지요?
"그렇죠. 제가 일했던 공정 가운데 리어덕터라고 히터나 에어컨 바람이 뒷자석으로 나오게 관을 연결하는 작업이 있거든요. 2교대 사업장이니까 A조는 정규직이고 제가 있는 B조는 비정규직이었어요."
-그런데도 임금은 얼마나 차이가 납니까?
"단협(단체협상)에서 정규직들만 지원받은 학자금 등등을 다 포함시켜서 따지면 절반이 안 되고요. 기본급으로만 따지면 정규직도 적어서 70%가 될 거고요. 통상급 대비로는 60% 정도? 성과급을 포함하면 55% 정도를 받습니다."
-같은 일을 하는데 임금을 절반 정도 받으면 불만은 당연하겠어요.
"처음에는 몰랐어요. 저희(비정규직)가 2003년에 노동조합을 만들었는데요. 그때까지는 워낙처우가 나빠서 근로조건을 개선하자는 취지가 강했어요. 2004년에 금호타이어에서 노동부 실사를 받아 불법파견 문제가 확인되니까 2년 이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까지 정규직으로 전환하더라고요. 그걸 보고 당시 금속연맹(금속노조의 전신)이 500인 이상 사업장의 사내하청 노동자 합법화를 사업으로 결정해요. 현대자동차 노조도 2004년 6월에 불법파견을 확인해 달라는 진정을 노동부에 넣었어요. 노동부가 이해 12월에 9,234개 공정 101개 업체 전체가 불법파견이라고 확인해 주죠."
-그러면 정규직으로 전환을 해야 하는 거죠?
"그렇죠. 파견법에 따라서 2년이 지난 날부터 정규직으로 고용이 된 것으로 보는 거지요. 그런데 회사는 따르지 않았어요. 노동부는 현대자동차를 파견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했어요. 그런데 검찰이 무혐의 판정을 내렸어요."
-그때부터 검찰이 문제였군요. 그래서 재판으로 가서 7년이 걸린 건가요?
"저희는 정규직 전환하라는 요구를 하다가 2005년 1월 파업을 했어요. 그 파업으로 101명이 해고를 당했어요. 89명이 3월에 노동부에 불법파견에 따른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어요. 지노위(지방노동위원회) 중노위(중앙노동위원회)에서 각하되고 행정소송을 제기했어요. 고법까지는 패소했는데 2010년 7월 대법원이 파기환송을 했어요. '불법파견이 맞고 고용이 2년 이상 된 최병승은 입사 2년 다음날인 2004년 3월 13일부터 정규직이다.' 파기환송심 재판이 고등법원을 거쳐서 작년 2월 대법에서 최종 확정이 났어요. 이어 작년 5월에 중노위 재심에서 부당해고가 맞다며 복직을 명령했어요. 여기에 회사가 다시 불복해서 행정소송 중이에요. '2004년 3월 13일부로 최병승이 정규직으로 고용된 거는 인정한다. 그러나 2005년 해고는 정당하다'는 거지요. 그래서 제가 농담처럼 하는 말이 우리나라 3심 제도는 (지법 고법 대법원 3심이 아니라) 대법원 판결을 세 번 받아야 확정되는 거라서 3심제도라고. 하하하."
-생활은 어떻게 하세요?
"밥은 아래서 농성 중인 조합원들이 올려 보내 주세요. 아침은 과일이나 음료수로 먹고 점심 저녁은 국 하나 밥 하나 김치 김 콩자반 이렇게 먹어요. 어쩌다 조합원이 반찬 갖고 오면 잘 먹고요. 처음에는 볼일 보는 게 힘들었어요. 뻥 뚫려져 있으니까 수치심 같은 게 있잖아요. 감기기운 한두 번 있었던 거 제외하면 몸은 나쁘지 않아요. 사무장은 100일 지나고부터 아령을 올려 달래서 열심히 하는데 저한테는 절대로 권하지 않는 조건으로 올렸기 때문에 저는 안 하고요. 하하. 6시10분 정도에 일어나면 밤 11시나 12시쯤 자요. 화물선 철로가 있어서 새벽에도 화물차가 다니거든요. 어느 순간부터는 안 들리더라고요."
-작년 11월 22일 회사가 최병승씨를 정규직으로 고용하겠다고 발령을 냈지요. 왜 안 갔습니까?
"대법원 판결은 제 개인에게 내린 판결이 아니에요. 저희 노동조합에 주는 판결이지. 2005년 노동위에 신청은 89명이 했는데 행정소송은 15명만 했어요. 돈 때문에요. 금속노조 울산법률원 소속 고재환 정기호 변호사님이 인지대도 내주고 변호사비도 받지는 않았어요. 세금 때문에 무료는 안 된다 그래서 최단가에 계약서는 썼는데 10원도 못 갚았어요. 밤새서 준비하고 서면 쓰신 분들인데. 저희도 염치가 있으니까 행정소송으로 갈 때는 공장별로 추렸어요. 이게 또 다 패소하니까 대법원 갈 때는 대표소송 형태로 당시 노조위원장과 사무국장인 저 두 사람만 상고를 한 거예요. 2004년에 노동부가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한 데에 회사는 아니라고 맞선 것을 두고 대법원은 노동부 판정을 지지해 준 거잖아요. 재판에는 저 혼자만의 자료가 아니라 현대자동차 내 전체 공장 전 공정의 하도급 운영실태에 대한 자료를 냈으니 판결은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적용되는 것이 맞아요. 또 대법원 판결은 판례잖아요. 2010년 11월 고법이 아산 지역 노동자들이 낸 근로자 지위소송에서도, 최근 GM대우차 (불법파견에 대한 대표 처벌) 대법원 판결도 이 대법원 판례를 판단근거로 대요. 다른 업체에까지 적용되는데 현대자동차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납득이 안 되지요."
-그러면 모든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어야 내려오나요?
"타협할 여지야 있지요. 저희 요구는 생산하도급 8,5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2003년 이후 해고 비정규 노동자 중 일부를 정규직으로 재고용하라는 것인데 이게 불가능하지도 않다는 걸 얼마전 이마트가 보여 줬잖아요. 노동부가 이마트 24개 업소를 조사하고 2,000명 좀 덜 되게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하니까 아예 1만명을 4월 1일부터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어요. 그렇게 해도 기업에 큰 손실을 입히는 게 아니라면 국내 재벌서열 2위고 세계 자동차 랭킹 5위 안에 드는 현대자동차가 대승적 결단을 내렸으면 좋겠어요. 이마트는 검찰이 노조파괴 문건 가지고 세 차례나 압수수색을 했어요. 노동부는 197억의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하고. 그런데 현대자동차는 2010년 대법원 판결 나고, 2012년 확정판결 나고 저희가 연거푸 회사 관계자를 고소고발했어요. 법학교수님 32명도 정몽구 회장을 고발했어요. 그런데 검찰은 계속 조사 중이라면서 시간만 끌어요. 노동부도 모른다고만 해요. 법에는 불법파견 업체 대표에는 징역 3년에 벌금 2,000만원을 내릴 수 있어요. 2002년에는 불법파견을 이유로 대우캐리어 대표를 구속했어요. 그 후 불법의 속도가 줄거든요. 그런데 그걸 안 해요. 대신 회사 측에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손해배상 가처분 신청을 하면 법원에서 노동자들의 통장이나 월급 부동산까지 가압류를 내려 버려요. 그러니까 노동자들이 버티기가 힘들어요."
-인권돋움이상을 받으면서 '전태일이 대학생 친구가 필요하다고 했듯 우리에게는 법조인이 필요하다' 하셨는데요.
"회사가 치사할 정도로 소송을 많이 해요. 우리한테 불법행동을 한다, 떼쓴다 그러는데 우리가 잘 모르거든요. 변호사도 필요하고 법률과 양심에 기초해서 판단할 수 있는 판사 검사분이 많다면 회사가 이렇게까지는 못 할 것 같아요. 이번 수상으로 우리 행동이 법률가들이 봤을 때도 떼쓰는 것은 아니라고 확인해 준 거 같아요."
-현대자동차가 4일부터 밤샘근무를 없애고 주간2교대로 바꾼 건 잘했다는 평가를 받던데요.
"정규직 노조와 회사가 주간2교대와 처우 개선을 합의했어요. 이렇게 바뀌고 시간당 생산하는 차량대수가 30대쯤 늘었어요. 인원추가 없이 생산이 늘었다는 것은 노동강도가 엄청 세졌다는 뜻인데 노동강도가 세지면 더 힘든 일은 비정규직에게 돌아가거든요. 그런데도 비정규직 노조와는 교섭도 거부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호소할 대상이 사라졌어요. 약한 집단은 눌러 버리고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 사람만 끌고 가 버리는 상황이 바람직한 걸까요?"
서화숙 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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