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가계부채 대책 마련에 나선 가운데 '빚을 갚지 않고 기다리면 탕감 혜택을 받을 수도 있다'는 도덕적 해이 확산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은행 연체율이 상승하고 예전보다 조기에 채무조정을 신청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집단적인 도덕적 해이는 금융권의 부실과 재정 부담을 높일 수 있으므로 서둘러 지원대상을 확정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10일 LG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최근 가계 채무불이행과 관련된 지표들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은행 가계대출 연체율(1일 이상 원금연체 기준)은 2009년 0.48%에서 작년 말 0.81%까지 치솟았고, 특히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2배 이상(0.33→0.74%) 뛰었다. 은행이 관리하는 가계 부실채권 비율 역시 0.49%에서 0.69%로 오름세다. 대출을 제 때 갚지 않는 고객은 늘고 은행이 회수가능성을 낮게 보는 채권도 덩달아 많아지는 셈이다.
현재 시행 중인 각종 채무조정 프로그램에서도 서둘러 빚 조정을 신청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선제 대응 차원에서 90일 미만 연체자에게 제한적인 혜택을 주는 신용회복위원회의 프리워크아웃 신청 비중은 2009년 8%대에서 지난해 말 24.6%로 3배나 급증했다. 원금과 이자 모두 대폭 감면해 주는 개인워크아웃(90일 이상 연체자 대상)에 비해 감면 폭이 훨씬 적지만 '일단 신청하고 (정부 대책을) 기다려보자'는 심리가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법원에서도 최근엔 선고 즉시 채무 전액을 탕감해주는 개인파산보다 5년간 일정액을 갚아야 하는 개인회생이 더 인기다. 올 1월 개인회생 신청 건수(8,868건)는 개인파산(4,630건)보다 2배가량 많았다. 역시 탕감의 대가로 모든 권리를 포기해야 하는 파산보다 상환 부담을 지더라도 향후 정부 대책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회생을 선호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조영무 연구위원은 "2003년 카드사태 때도 정부 대책에 기대려던 사람들의 연체가 급증해 카드사들의 부실이 확대됐다"며 "최근의 도덕적 해이 조짐이 확산될 경우 금융사는 물론, 정부 대책의 재원 부담도 늘어나는 만큼 조속히 지원 대상ㆍ기준을 확정하고 꾸준히 빚을 갚아온 사람을 우선 지원하는 등의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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