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 남자아이를 키우는 주부 박모(20대 중반)씨는 평소 장난감을 고를 때 고민이 많다. 가격이 너무 비싸 새 장난감을 살 엄두가 안 나는 탓이다. 박씨는 지난달 유명 오픈마켓에서 ‘장난감 럭키백 행사’ 광고를 봤다. 4,990원에 배송료만 내면 새 장난감을 최소 3개 이상 담아서 집으로 보내준다기에 망설임 없이 구매했다. 하지만 집에 도착한 럭키백을 보자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2002년 치킨업체에서 배달용 판촉 행사를 했던 머리띠와 장난감이었다. 이 장난감은 작동조차 안 될 뿐 아니라 군데군데 곰팡이가 피어 아예 사용할 수 없었다. 화가 난 박씨가 판매한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구매자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었다.
최근 국내 유통업계 전반에 퍼지고 있는 럭키백 열풍이 부작용을 낳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더니, 럭키백을 구매한 구매자들이 일명 '멘붕(멘탈 붕괴)'을 겪고 있는 셈이다.
럭키백은 본래 일본의 복주머니(후쿠부쿠로) 행사에서 유래된 마케팅 기법이다. 복주머니에 내용을 알 수 없는 상품을 무작위로 집어넣는데, 이때 복주머니는 내용물의 가격보다 저렴하게 판매한다. 특히 일본에서는 복주머니에 담긴 상품을 알 수 없어 일종의 ‘복권’처럼 여기는 풍습도 있다. 이 복주머니를 구매하면서 한 해 운세를 점치는 식이다.
국내에는 2007년 스타벅스가 럭키백 행사를 처음 실시한 이후 유명 기업이 잇달아 동참하면서 신종 마케팅 방식으로 주목 받고 있다. 럭키백은 대개 5만원 안팎에 판매되는데, 기업은 재고품을 싼 값에 제공하면서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일부 기업이 럭키백을 ‘재고떨이’에 이용하면서 소비자들의 불만도 커졌다. 사용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른 제품이 많다는 얘기다. 박씨는 "4,990원이란 적은 금액이지만 이 정도로 쓰레기 상품을 보낼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면서 "한 푼이라도 아껴서 아이에게 좋은 선물을 해주고 싶었던 내가 어리석었나 보다"라고 격분했다.
럭키백 내용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 환불을 요청하는 사례도 많다. 인기 주얼리브랜드 A도 지난달 중순 럭키백 행사를 했는데, 대개 몇 년 지나 유행이 지난 재고품이 대상이었다. 막상 제품을 구매한 구매자들은 “세일 때도 충분히 이 가격에 살 수 있는 제품” “색이 바란 것 같다” “줘도 안 갖고 싶은 아이템을 주다니”라며 불만을 쏟아냈다. 환불 요청도 많았다.
럭키백이 ‘한탕’을 노리는 사람의 심리를 자극한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경제적으로 불안할 때 사람들은 무언가 운명에 기대는 심리가 있다. 그 불안한 심리를 활용해서 기업에서는 이윤을 극대화하고자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자칭 ‘애플 마니아’인 대학생 조정제(26)씨도 씁쓸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조씨는 “아침 일찍 애플 럭키백을 사기 위해 집을 나섰는데, 막상 매장에 가보니 전쟁터 같았다. 경쟁자들에 밀려 럭키백을 구매하지 못한 것도 속상했지만 대박을 쫓기 위해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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