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시간에 만나 떠들어대는 것이 이탈리아 추기경들의 일과였다. 서거한 교황이 이탈리아인이 아니었다는 것은 이탈리아 추기경 모두에게 중대한 사안이었다."(로베르토 파치의 소설 )"만약 여러분이 (콘클라베)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지겨워서 눈물을 흘릴 겁니다."(프란츠 쾨니히 추기경의 회고)
여기 두 가지 버전의 콘클라베가 있다. 파치의 소설은 지역으로 세력화하려는 추기경들의 정치를 부각했고, 쾨니히 추기경의 회고는 지루한 묵상과 기도로 이어지는 영적인 과정을 묘사했다. 콘클라베의 진실은 콘클라베를 경험하지 못한 소설가의 취재력과 상상력, 경험했으나 비밀준수 의무를 지켜야 하는 추기경의 자기검열 사이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다.
성의(聖意)의 베일 뒤에서 펼쳐지는 은밀하고도 드라마틱한 교황 선출의 정치를 추기경들의 말과 바티칸 전문가들의 기록을 통해 살펴보자.
콘클라베를 흔드는 손
교황이 사망(또는 사임)하고 바티칸이 콘클라베를 준비하는 사이, 교황청 밖에서는 보다 노골적인 여론전과 인신공격이 난무한다. 이 역할을 주로 담당하는 것이 언론이다. 언론은 차기 교황 유력 후보가 누구인지 보도하며 여론몰이에 나선다.
교황 선출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추기경들도 언론 인터뷰를 이용한다. 출마 의사를 밝히거나 특정인 지지를 표명하는 일은 금지돼 있어, 추기경들은 최대한 우회적 표현으로 생각을 드러낸다. 이번에도 션 오말리(69ㆍ미국), 크리스토프 쇤보른(68ㆍ오스트리아), 대니얼 디나르도(64ㆍ미국), 지오반니 라졸로(78ㆍ이탈리아) 추기경 등이 잇달아 언론과 접촉했다.
속보에 굶주린 언론을 이용하는 너저분한 폭로전도 벌어진다. 2005년 콘클라베를 앞두고 안젤로 스콜라(72ㆍ이탈리아) 추기경이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거나 이반 디아스(77ㆍ인도) 추기경이 당뇨병을 앓는다는 기사가 갑자기 나왔다.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77ㆍ아르헨티나) 추기경이 군사정권과 결탁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세 사람 모두 당시 유력한 교황 후보였다.
문제는 이런 소문이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여론과 추기경들의 판단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가톨릭 전문지인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 기자로, 바티칸 내부 사정에 가장 정통한 언론인으로 꼽히는 존 앨런은 "누구도 소문이 진실인지 검증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네거티브가 언급되는 것만으로도 특정 후보를 끌어내리기에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탐색의 장, 추기경 총회
지난 4일 시작된 추기경 총회는 추기경들의 결정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행사로 꼽힌다. 추기경 총회는 교황 궐위 상황에서 교회 현안을 다루기 때문에, 당연히 차기 교황이 갖춰야 할 덕목이나 자질 문제가 주로 논의된다. 차기 교황의 윤곽도 여기서 대충 드러난다.
추기경 총회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해 교황이 오른 이는 바로 전 교황인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베네딕토 16세)이다. 10개 국어를 구사하는 라칭거 추기경은 추기경 단장 자격으로 2005년 총회를 이끌었는데, 추기경들을 하나하나 만나 상대 모국어를 써 가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신의 로트바일러(독일산 맹견)'라 불렸던 라칭거는 이런 접촉을 통해 강성 이미지를 상당히 희석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78년 추기경 총회에서는 킹메이커의 활약이 돋보였다. 당시 추기경단에서 가장 존경을 받던 프란츠 쾨니히(오스트리아) 추기경은 카롤 보이티야(요한 바오로 2세)라는 무명의 폴란드 추기경을 지지하자는 여론을 조성했다. 가톨릭이 공산주의와 화해하기 위해서 동유럽 출신 교황이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바티칸의 밤을 주목하라
추기경 총회 기간에는 친분이 있는 추기경끼리 로마 시내 레스토랑 등에 모여 투표 전략을 짜거나 다른 추기경을 설득할 방법을 논의하기도 한다.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언어권이 같은 추기경들의 모임도 교황 선출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변수다. 로마 시내 판테온 근처에 있는 프랑스 레스토랑 라우 비바, 그레고리오 대학에서 가까운 레스토랑 아브루치 등이 주요 회합 장소로 꼽힌다.
콘클라베가 시작되면 투표권을 가진 추기경들의 외부 접촉이 차단된다. 추기경들은 낮 동안 시스티나 성당에서 하루 오전 오후 두 번씩 최대 네 차례 투표를 하고, 밤에는 숙소에 격리되어 휴식을 취한다. 실제 콘클라베에서는 기도와 묵상, 그리고 투표만 이어지는 것이 보통이어서 추기경들의 의견 교환이나 이견 조율은 주로 숙소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앨런 기자가 2005년 콘클라베 참석자들을 취재한 바에 따르면, 당시 친 라칭거파 추기경들은 마음을 정하지 못한 추기경들을 끌어들이려 숙소에서 로비 활동을 했다. 라칭거 추기경의 제자이자 '라칭거의 영적인 아들'로 불렸던 쇤보른 추기경이 킹메이커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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