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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는 순간, 화장실도 달콤한 서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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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는 순간, 화장실도 달콤한 서재가 된다

입력
2013.03.08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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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언제, 어디서 책을 읽는가. 혹시 아침 나절 화장실 변기 위가 당신의 주요한 독서 공간인가. 그렇더라도 부끄러워하지 마시라. 영화배우 못잖은 세련된 감각을 자랑하는 프랑스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도 화장실에서 책을 읽곤 했다. "거기서 읽은 책의 내용이 제일 몸에 잘 새겨진다"는 게 이유였다.

사유하는 산책자 정수복씨가 이번에는 책을 읽는 사람들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산책을 떠났다. 이름하여 . 걷기에서 사색과 사유의 샘물을 길어올렸던 그가 프랑스에서 보낸 10년간의 자발적 망명생활을 토대로 선보였던 같은 파리연작의 마지막 편이다.

독서하기 좋은 때는 저마다 다르다. 법정 스님은 모두 잠든 밤 산중 작은 집에서 홀로 깨어 책 읽기를 즐겼고, 고은 시인은 하나의 방에 세 개의 책상을 배치해 새벽이면 동창에, 낮에는 남창에, 저녁이면 서쪽 창가에 앉아 읽고 쓴다. 저자는 오전에는 글을 쓰고, 오후에는 읽어야 할 책을 읽고, 밤에는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 물론 가장 황홀한 시간은 밤이다.

책을 읽는 대표적 공간은 서재다. 책을 읽는 사람들을 서재인이라고 한다면, 이 신인류가 서양사에 등장한 것은 16세기 르네상스 시기. 이 때 왕과 귀족들의 저택에 서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오로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데에만 이용되는 책상도 이 무렵 첫 등장한다. 신앙을 위한 중세의 독서가 이제 독립적인 지식 탐구 행위로 바뀐 것이다.

저자는 '모든 서재는 그 주인의 내면 풍경'이라고 말한다. 어떤 책들이 어떤 기준으로 분류되고 배치되어 있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관심 분야와 지적 수준을 가늠할 수 있고 그 사람의 머릿속이 어떻게 구획되어 있는지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도의 서재 공간이 없어도 좋다. 어디서든 가능한 게 책 읽기의 매력이니까. 카페와 공원, 서점, 지하철, 버스…. 저마다의 공간이 저마다의 매력으로 독서가를 유혹한다. 장정일은 기차에서도 쉼 없이 책을 읽지만, 책을 읽기 위해 이유 없이 기차를 타는 김무곤 같은 독서가도 있다. 미국 작가 애너 퀸들러는 비행기 안에서 혼자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프랑스 작가 파트리크 드빌은 창문 밖으로 이국의 언어들이 웅성거리는 호텔방에 앉아 책을 읽을 때 마음이 가장 편안하다고 말한다.

독서예찬이 주제인 이 책의 머리에 저자는 유머 넘치는 '독자 권리 장전'을 얹어놓았다. 신성불가침의 기본권인 독서할 권리에는 언제 어디서 어떤 책이라도 읽을 수 있는 권리 외에 '책을 읽지 않을 권리' '중간중간 건너뛰며 읽을 권리' '많은 사람이 읽는 책을 읽지 않을 권리' 등도 포함돼 있다. 장전의 조항에 따라, 아무 때, 아무 데서나, 어디서부터 읽어도 좋을 책이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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