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어디 있지?"마약상이 물었다. "저쪽 구석에."살바도르 마르티네즈가 대답했다. 점심식사 손님들로 분비는 미국 텍사스주 멕시코 국경지역인 엘 파소의 한 식당에서 아이스티를 앞에 두고 오간 대화다. 마르티네즈는 미국 마약단속청(DEA) 소속 위장경찰이다. 그는 돈의 위치를 모호하게 말했다. 지침이었다. 마약상은 "티파니 바에서 물건을 건네겠다"고 했다. 마르티네즈는 1만5,000달러가 담긴 가방을 가지고 갔다. 허리춤에 권총이 슬쩍 보이게 했다. 권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 마약상은 거래를 더 진지하게 여긴다. 마약상이 헤로인이 든 스포츠 가방을 가리키자 마르티네즈는 주머니에서 붉은 스카프를 꺼내 이마의 땀을 닦았다. 신호였다. 총을 겨눈 연방요원들이 들이닥쳐 "꼼짝 마! DEA다!"라고 마약상을 제압해 수갑을 채웠다.
1995년 마르티네즈가 위장경찰로 처음 참여한 작전이었다. 어린 시절 위장경찰들의 활약을 그린 TV 드라마 '마이애미 바이스(Miami Vice)'를 보고 꿈꿨던 그의 인생 목표는 그렇게 이뤄지는듯 싶었다. 그러나 18년이 흐른 지금 마르티네즈(50)는 살인미수죄로 7년을 복역하고 출소한 전과자다. 미국민을 마약으로부터 보호하려고 했던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독일 주간 슈피겔은 마르티네즈의 몰락을 통해 처절하게 패배하고 있는 멕시코 국경지역의 '마약과의 전쟁'의 현주소를 폭로했다.
DEA 면접에서 "미국에 봉사하고 싶다"고 말했던 그는 곧 자신이 생각한 마약 경찰의 이미지가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료들이 가장 많이 쓰는 단어는 'Fuck'이라는 욕설이었다. 그도 담배를 씹고 욕을 입에 달고 살았다. 검은 머리를 기르고, 끝이 뾰족한 부츠와 실크셔츠를 입었다. 영화처럼 진품을 확인하기 위해 마약 가루를 혀로 테스트 했다가는 혀가 마비된다는 것도 알았다.
그는 마약상들을 잡는 활약을 했지만 마약카르텔의 두목들은 닿을 수 없는 목표였다. 유령 같았다. 그들은 쫓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돈과 권력, 경험을 가졌다. 이들이 따라야 할 법칙은 없었다. 누구나 그들을 두려워했지만 실제 그들은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세계적으로 가장 악명 높은 멕시코 시나올라 카르텔의 두목 엘 차포 구즈만은 7년 전 딱 한차례 공공장소에 나타난 적이 있다. 15명의 경호원을 데리고 레스토랑에 나타나 문 안쪽에 바리케이드를 친 뒤 30여명의 손님들의 휴대폰을 압수했다. 그리고 손님들에게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호아킨 구즈만 로에라입니다. 영광입니다"라고 인사했다. 스테이크와 새우를 주문해서 먹고, 다른 모든 손님의 식사비를 계산한 뒤 유유히 사라졌다.
거대 마약카르텔과 싸우는 경찰 개개인에게 '합법적'이란 것은 무력하기만 했다. 그에게도 어느새 '범죄의 에너지'가 침투해 들어갔다. 영장 없이 집을 수색했다. 마약을 찾으면 나중에 수색영장을 발급받는 식이었다. 그는 마약카르텔의 중간보스로 활동하는 멕시코인을 체포했다. 증거는 없었지만 직감으로 알았다. 3주 후 그 중간보스는 풀려났다. 마르티네즈는 멕시코 군 관계자와 접촉해 멕시코인의 인상착의와 풀려나는 시간을 알려줬다. 멕시코인이 국경을 넘자 검은 미니버스가 나타나 그를 납치했다. 마르티네즈는 "멕시코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납치당한다"며 "파묻히고, 호랑이나 상어에게 던져지거나, 염산 탱크에 던져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모든 악당을 다 잡을 수 없다. 멕시코 쪽에 이름을 주고 '알아서 처리해라'라고 넘기면 그쪽에서 그 사람들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마르티네즈는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마르티네즈가 경계를 확실히 넘게 된 계기는 사촌의 죽음이었다. 사촌 브루노는 27살에 엘 파소의 쇼핑센터 주차장에서 총에 맞아 사망했다. 살인자는 13살 소년. 마약카르텔이 장악한 멕시코 시우다드 후아레즈 지역에서 온 소년이었다. 소년은 살인 동기를 전혀 말하지 않았다. 3년이 지나 전화가 걸려왔다. 멕시코의 한 경찰이 "소년이 풀려났다, 처리해줄 사람들 몇 명을 알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마르티네즈는 DEA의 자금 1만달러를 경찰에게 건넸다. 경찰은 마르티네즈에게 "그 소년이 살해되기를 바라느냐"고 물었고, 마르티네즈는 "그렇다"고 했다.
몇 주 후 마르티네즈는 연방수사국(FBI)의 조사를 받았다. 그 멕시코 경찰이 FBI에 마르티네즈와의 대화를 녹음해 전달한 것이다. 멕시코 경찰이 왜 배신했는지 그는 아직 알지 못한다.
마르티네즈는 87개월 형을 선고 받았다. 감옥에서 생각했다. 경찰들이 마약상을 쫓지 않으면 사람들은 더 행복해질까. 차라리 마약이 합법적으로 인정된다면 카르텔도 없고, 마약 경찰도 없고, 후아레즈에서 저녁에 데킬라 한잔을 마시기 위해 나들이하는 것도 가능해질까. 그렇다면 브루노는 아직 살아있을 테고, 나도 자유롭게 아내 수지를 안고 있을 수 있을 텐데….
출소 후 그는 수감?피의자에게 보석금을 빌려주고 수수료를 받는 보석보증인으로 살고 있다. 그는 "합법이라는 것이 틀린 것으로 느껴진다"며 "잘한 것도 없지만, 잘못한 것도 없으며 단지 배운 대로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자신은 결백하다고 했다. 더 이상 분노는 느끼지 않는다. DEA가 자신을 내친 것도 이해한다. 브루노를 죽인 소년도 언젠가는 같은 운명에 처해질 것이다. 자신을 배신했던 멕시코 경찰도 총에 맞고 죽었다. 용의자는 잡히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마약 밀매방식은 더 다양해지고 대담해졌다. 국경지역에서 대포에 마약을 넣어 쏘아 국경 너머로 전달하는 방식까지 등장했다. 그렇게 끝이 보이지 않는 '마약과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무려 6만여명이 지난 6년간 멕시코의 '마약과의 전쟁'에서 사망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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