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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성폭력 피해자로 산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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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성폭력 피해자로 산다는 건…"

입력
2013.03.08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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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무려 일곱 번이나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가 쓴 수기다. '아동 성폭력 피해자로 산다는 것'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의 저자는 서른아홉이 되었다. 그렇지만 첫 피해를 당한 4월이 될 즈음이면 매년 입원을 할 정도로 몸이 아프다. 과거의 일이라지만 상처는 치명적이고 끊임없이 현재의 그를 괴롭힌다.

악몽 같은 일은 아홉 살 때 일어났다. 엄마의 식당 단골손님이 그에게 뚝섬유원지가 어디인지 알려달라며 유인했다. 열두 살 때에는 할머니 집에서 사촌들과 어울려 자다가 삼촌에게 당했고, 이듬해에는 등교길에서 낯선 아저씨에 의해 방공호로 끌려갔다.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나 무기력한 엄마에게 기댈 수 없던 피해자는 이런 사실을 어른이 된 지 한참 후에야 가족들에게 알릴 수 있었다.

그는 점점 말수가 줄었고 대학에 갔지만 우울증과 두통은 사라질 줄 몰랐다. 억울해서 죽고 싶었고 무기력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위해 찾아간 학원 원장에게 또다시 피해를 당한다. 어린아이가 아닌데 왜 적극적으로 이를 뿌리치지 못했을까. 성인이 되었으나 가난했고 어떻게든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성희롱이 빈번한 상황을 참아야 했던 피해자는 결국 또다시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성매매'에 뛰어들기도 한다. 갈 곳은 결국 성매매 밖에 없다는 자괴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것이다. 저자는 성폭력 상담원으로 일하다 현재는 여성학을 공부하고 있다. 그는 책을 통해 성폭력이 단순한 성의 문제가 아니라 약자에 대한 폭력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특히 성폭력이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건만 해결되면 된다거나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해결되는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글을 쓰는 동안 앓아눕기를 되풀이하다가 4년 만에 마무리했다"는 그는 책의 몇몇 대목에서 머뭇거리기도 한다. 아직 모든 걸 떨쳐내지 못한 그 마음이 읽힌다. 책은 저자가 성폭력 상담원 등으로 일하면서 한 여성주의 저널에 연재한 글을 본 출판사 편집자가 제의해 출간됐다. 저자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다른 생존자에게 살아갈 이유와 용기를 전하고자 책을 허락했다고 한다.

지난해 나온 국내 첫 친족성폭력 수기 에 이은 두 번째 관련 책으로, 곪은 상처를 드러내 치유받고 또 치유하는 힘을 가져 더 값지다. "성폭력 경험을 말하기 어려운 한국 사회에서 그 피해자에게 폭력적인 문화에서 피해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여전히 답을 찾고 있다"는 저자의 말이 무겁게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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