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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취임식과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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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취임식과 공연

입력
2013.03.0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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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왕정시대 서양의 대관식이나 즉위식은 왕의 존엄과 권위를 나타내는 의식의 극치였다. 초기의 즉위식은 성직자가 국왕의 머리에 성유(聖油)를 붓는 것만으로 단출하게 끝났음이 구약성서에도 나와 있지만, 나중에는 눈이 휘둥그레지는 오페라를 초청 인사들에게 보여줌으로 그 권력과 신분을 과시하기도 했다 한다. 동양의 즉위식을 가장 인상 깊게 보여준 것은 아마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 황제의 등극에 맞추어 만조백관이 바닥에 엎드려 만세를 외치던 그 웅장한 울림을 뒤로하고 세 살의 꼬마 푸이가 뛰어놀던 장면일 것이다. 우리나라도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비운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던 조선황제 순종의 즉위식은 서양식 예법과 에케르트의 음악으로 구성된 최초이자 마지막 신식 즉위식이 되고 말았다.

근대를 지나며 선거에 의해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민주국가에서 대통령의 취임식은 그 정치적 성격은 달라졌으나 상징성은 이에 못지않다. 2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의 대통령 취임식은 초대 워싱턴 대통령이 취임 선서문 끝에 ‘하느님이여 굽어보소서’라는 문구를 덧붙이며 성경에 입을 맞춘 후 취임 연설을 가지는 것이 관례로 자리 잡아 왔다. 루즈벨트 대통령 이후 아침의 식전예배는 워싱턴의 세인트존스 교회를 ‘대통령의 교회’로 유명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카퍼레이드와 성대한 만찬과 함께 취임식에 어느 가수가 국가를 불렀느냐가 세간의 화제가 되는 시대가 된 것도 사실이다.

이번 우리나라 18대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은 역대 최대 규모로도 화제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음악이 풍성한 공연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이목을 끌었다. 추운 겨울 삭풍이 몰아치는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하염없이 시작을 기다려야 하거나 딱딱한 의전 위주의 지루한 행사를 극복하고 즐거우면서도 의미 있는 행사로 만드는 것이 큰 숙제였다. 동계올림픽 유치로 국제행사 경험이 많은 준비위 위원장과 공연계 인사가 절반 가까이인 위원들은 뮤지컬 연출가 총감독의 지휘 하에 분야별 감독들, 기획사 관계자들, 공무원들과 밤낮으로 머리를 맞대야 했다.

‘국민뮤지컬 행복한 세상’이라는 이름의 식전행사는 인기 개그맨들의 진행으로 참석자들을 즐겁게 했고, 우렁찬 목소리의 점고와 함께 전통의 상징인 풍물과 민요로 그 문을 열었다. 시대별 특징을 영상물로 보여주고 그 당시의 대표적인 노래들을 가수와 뮤지컬 배우, 아이돌 스타들이 아카펠라, 브라스앙상블, 춤꾼들과 함께 들려주어 나이든 세대에는 추억과 향수를, 신세대들에게는 상상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세계적인 한류스타의 출연 소식에 외국인 내빈들이 더 환호했다는 후일담도 있다. 이제는 국제적인 스타로 지구를 누비는 싸이에게도 돌부처처럼 앉아 있을 군중들이 일생에 가장 ‘어려운’관객일 수도 있었지만 역시 춤추는 취임식이 되게 하는 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힘찬 팡파르와 군악이 본 행사의 시작을 알리면 이어지는 애국가 선창은 가장 상징적인 순서. 성악가라면 누구나 탐내는 자리라 하지 않을 수 없기에 선정에 치열한 각축이 있다. 또 하나의 백미 축하공연에서는 아리랑을 뉴에이지 풍으로 재창작하고 장르를 대표하는 네 명의 디바와 민간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참신하면서도 누구나 친근하게 즐길 수 있는 명곡을 낳게 했다. 최근 대세인 합창은 이번 행사에서도 그 힘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피날레로 전 참가자가 같이 부르는 국민대합창은 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짜릿했을 것이다.

공중파 방송국 모두가 취임식의 생중계에 유래 없이 공연전담 해설자를 앉힌 것도 문화의 비중이 점점 커지는 것의 반증이다. 남녀와 세대를 아우르고 대중음악과 국악 그리고 클래식을 고루 배려한 데는 여성대통령의 취임과 국민대통합의 취지를 반영하려는 노력이었다. 취임식이 신나는 한바탕 축제처럼 된 것에는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나쁘지 않다는 반응이 있다. 이제 문화적이고 창의적인 취임식으로 그 스타트를 끊었으니 국정에서도 그 의의를 살리는 일만 남아 있다.

이선철 용인대 교수·감자꽃스튜디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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