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적 에세이·노랫말 쓴 이유자녀 교육·부모 봉양·노후 걱정… 여느 50대처럼 불안한 삶 첫 토로이시대 짠한 그들 위로하고 싶었다박근혜 대통령과의 인연·러브콜 고사 이유1년에 한 두 번 복지·일자리 대화우리세대 꿈꾼 세상 아직 가슴속에 유신과 화해는 내청춘 짓밟는 일박근혜 대통령 취임후 실망 크지만 기대 안버려나는 헷갈리는 사람이다?누군가는 '서울대 5적'이라지만 사유 없이 한 편에 서는 것 경계우리사회 '공동구역' 찾기 나서
경북 영주의 산골에서 태어나 서울 변두리 판자촌에서 자란 소년은 용케 공부를 잘해 친척 중 첫 서울대생이 됐다. 유신독재에 짓눌리며 책 속으로 망명한 청년은 운 좋게 전액 장학금 받고 유학을 떠나 하버드대 박사모를 쓰자마자 교수가 됐다. 중견 사회학자이자 칼럼니스트로 명성을 얻고 경제적으로도 안정을 찾았을 무렵, "너는 누구냐?"는 느닷없는 물음을 앞세운 허무가 엄습했다. 정체성의 뿌리를 찾아 헤매던 중년의 발길은 청춘기를 보낸 1970년대에 가 닿았다. 그 시대, 나아가 20세기 한국의 기원을 찾아 떠난 역사 기행은 조선의 백성이 어떻게 근대의 인민으로 진화했는가를 천착한 저작 을 낳았다. 그 시절 푸른 청춘의 골짜기를 함께 건너 온 동년배들과의 대화록은 최근 '이 시대 50대 인생 보고서'란 부제를 단 자전적 에세이 로 엮여 나왔다.
송호근(57)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얘기다. 사실 그를 만나려 한 건 지난주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 초청 강연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 후 행보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는 뉴스를 접하고 나서다. 신간 얘기를 걸쳤지만 정치 얘기에 방점이 찍히리라 예견한 그는 만남을 주저했다. 몇 번의 문자와 전화가 오간 뒤 지난 6일 서울대 연구실을 찾았다.
그는 한 정치평론가가 종편 프로그램에서 거론한 '서울대 5적'에 백낙청, 안철수, 안경환, 조국 교수와 함께 자신이 4위에 오른 얘기부터 꺼냈다. 말 나온 김에 보수 논객 혹은 중도 우파로 불리지만, 더러 기회주의자란 말도 듣는 그의 정체성부터 따져봤다.
'5적'이라니, 황당하고 불쾌했겠어요.
둘째 딸이 친구한테 들었다며 방송 캡처를 카톡으로 보냈길래 찾아봤는데 급 낮은 얘기더라고요. 술자리에서나 할 얘기를 무슨 방송까지 하는지. 제 책이랑 칼럼을 맥락 다 빼놓고 멋대로 해석해 제가 좌파에 붙었다, 이명박, 안철수한테 붙었다 그랬다는 거예요.(웃음) 인정 받는 평론가가 그랬다면 대꾸를 해야겠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거죠.
그럼 스스로 생각하는 이념적 성향은 뭔가요?
분야마다 달라요. 경제는 중도 우, 노동은 중도 좌쯤 돼요. 이 둘이 결합되면 스웨덴처럼 사회적 시장경제의 기반이 되는데, 문제는 세금이죠. 우파는 세금을 적게, 좌파는 많이 매기라는 건데, 저는 좀 올려도 된다고 봐요. 모든 분야를 하나의 논리로 묶어서 갈 수는 없어요. 영역별로 가능한 해법을 찾아야죠. 저는 깊은 사유 없이 어느 한편에 가담하는 것을 경계해요. 이러니까 사람들이 헷갈릴지도 모르죠. 기회주의란 말도 나오는데, 권력을 피할 기회를 노리는 기회주의라면 맞겠네요.(웃음)
'헷갈리죠?' 송 교수가 지난해 펴낸 의 서문 첫머리다. '너는 어느 쪽인가'를 물어대는 사회에서 나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어떤 기준으로 살아가야 할지 헷갈리는 게 당연하고, 헷갈림은 더 합리적인 대안을 찾으려는 적극적 사유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사회에 당장 필요한 것은 이념을 넘어 좌우파의 '공동구역'을 찾는 일이며, 대선의 화두였던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제대로 실현하려면 일자리를 만들고 지키고 나누는 '일자리 정치'를 중심에 놓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제안은 대선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를 '헷갈리는 사람'으로 모는 이가 적지 않다는 건 이분법 사회를 넘어서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에서 자기고백을 담은 앞부분은 소설처럼 썼던데.
고백록이랄까, 사소설이랄까, 아무튼 나를 이렇게 환히 드러낸 책은 처음이라 쑥스러워요. 지난해 11월 말 모임에 갔다가 술에 취해 대리운전기사를 불렀어요. 저와 동년배였는데 토목 전공 전문대 출신으로 중견 건설사에 취직해 제법 잘 나가다 부장을 끝으로 쫓기듯 그만뒀대요. 사업에 손 댔다 퇴직금만 까먹고 대리운전으로 용돈벌이나 한다는 얘기를 듣자니 한없이 서글퍼졌어요. 집 근처 호프집에서 함께 술 마시면서 많은 얘기를 나눴죠. 그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제 얘기를 솔직하게 담았어요. 남들이 보면 서울대 교수에 폼 잡고 신문에 글도 쓰니 멋지게 살겠구나 싶겠죠. 그런데 아니다, 나의 내면도 당신들처럼 갈가리 찢겨 있고 집 장만이나 자녀 교육, 부모 부양, 노후 걱정 등에 쩔쩔맨다, 그러니 당신들이 살아온 인생도 당신만의 것이 아니다, 그걸 말해주고 싶었죠. 우리 세대를 위한 공감과 위로가 책을 쓴 가장 큰 목적이고, 현실에서 부딪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한 구체적 해결 방안이나 국가정책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향후 과제로 미뤄뒀어요.
송 교수는 베이비부머(1963~55년생)이자 '1970년대 세대'를 '가교 세대'라고 개념화했다. 공유경험이 거의 없는 '농업 세대'와 'IT 세대', 그리고 한국의 근대와 현대 사이에 다리를 놓은 세대란 뜻이다. 오늘날 사회의 기본 틀을 잡은 이 세대 연구는 사회 현상을 관찰하고 진단하는 사회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그에게 무궁무진한 글감을 제공하는 샘이기도 하다. 전세를 전전하다 뒤늦게 강남에 빚 끼고 아파트 한 채 마련하느라 등골이 휜 사연, 수능시험날 시험장 문밖을 서성이는 부모들을 비웃다 제 일로 닥치자 과외다 뭐다 해 줏대 없이 흔들렸던 부끄러운 일 따위를 솔직히 털어놓은 것도 "우리 세대가 만들고 망쳐 온 사회 문제들을 냉철하게 되돌아보자는 뜻"이라고 했다.
그는 베이비부머 연구 덕에 작사가로도 데뷔한다. "가왕 조용필씨 30년 팬이에요. 그분도 발표해놓고 잊어버린 노래들까지 다 알아요. 그 노래에 울고 웃고 위로 받았던 얘길 5년 전 신문 칼럼에 썼더니 이 양반이 보고 전화를 했어요. 술 한잔 하자고. 그렇게 술친구가 됐죠." 어느 날 조씨가 '라라라'하며 멜로디만 담은 CD를 건네며 "가사 한번 붙여 봐" 했다. 수십 번 듣고 있자니, 을 쓰며 수없이 마주쳤던 퇴직한 50대 가장의 쓸쓸한 뒷모습이 떠올랐다. 4월 발매 예정인 조씨의 정규앨범에 실릴 '어느 날 귀로에서'는 그렇게 탄생했다. '돌아오는 길목에 외롭게 핀 하얀 꽃들/ 어두워진 그 길에 외롭게 선 가로등이/ 빛나는 기억들 울렁이던 젊음은 그곳에 두고 떠나야 하네/ 이별에 익숙한 작은 내 가슴 속에 쌓이는 두려움/ 내 푸른 청춘의 골짜기에는 아직 꿈이 가득해 아쉬운데/ 귀로를 맴도는 못다한 사랑은 만날 수는 없지만 이제는 알 것 같은데.' 최백호씨가 "곡 나온 뒤에 가사 붙이는 사람은 천재"라고 했다고 하자, 스마트폰에 담아둔 노래를 들려주며 쑥스러워하던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용필 형님도 나중에야 그렇게 곡 주고 가사 붙여달라 한 건 처음이래요. 제가 엄청난 답을 푼 건데, 잘 풀었는지는 모르겠네요."
베이비부머의 애환과 자부심에 20대, 30대도 공감할 수 있을까요?
신경 안 써요. 70년대 세대의 역사적 위치를 그려내는 데도 급급해요. 저도 10, 20%쯤 눈치 챘을까, 진정한 의미를 아직 깨닫지 못했으니까. 그냥 너희들 아빠, 엄마가 이렇게 살았다고 보여주는 거죠. 저희 딸은 보고 막 울더라고요. 그냥 눈물이 난대요. 그 정도도 못 느끼면 할 수 없죠. 2장 제목을 '아픈 청춘은 그래도 행복하다'고 달았는데, '니들은 아프냐, 우리는 몸을 던졌다, 그래서 청춘이 망가진 사람도 많다' 그런 뜻도 담겨 있어요.
70년대 세대라고 다들 몸을 던진 건 아니잖아요.
그렇죠. 개인의 선택이니까. 사실 대학생들도 독재에 어떻게 저항해야 하는지 잘 몰랐어요. 일부는 혁명이론을 담은 책 속으로 망명했고, 일부는 행동에 나서 386 운동권의 씨앗을 뿌렸죠. 대다수는 어정쩡하게 있다가 산업전선으로 빨려 들어갔고. 하지만 그 시절에 학문적 정체성의 뿌리를 둔 저 같은 사람은 유신정권과 절대 화해할 수 없어요. 박 대통령이 선대본부장 맡아달라 했을 때 고사한 것도 대놓고 그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그런 이유였어요. 물론 조언은 할 수 있겠죠. 70년대 세대에겐 우리가 꿈꿨던 세상의 이미지가 불꽃이 되어 가슴에 남아 있어요. 그 불꽃을 꺼뜨리고 선을 넘어가는 건 도저히 못하죠. 저쪽에 몸 담으면 뭐하나, 권력이나 부를 추구하겠죠. 그건 내 청춘마저 짓밟는 일이죠.
선대본부장, 인수위원장, 막판에는 총리 후보에까지 거론됐죠. 아카데미로 치면 '최다 노미네이트, 노 트로피'인데, 그렇게 끈질긴 러브콜을 받은 이유가 뭔가요?
박 대통령과는 2006년부터 어떤 계기로 인연이 닿아 1년에 한두 번 정도 만났어요. 복지나 일자리 같은 문제들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거죠. 그러니 저에 대해 잘 알고 있겠죠. 책도 본 것 같아요. 박 대통령이 직접 제의한 건 총선 전, 그리고 대선 때 두 번이에요. 인수위원장 등은 제의를 받은 게 아니라 주변에서 천거를 한 듯해요.
지난 대선에서 가장 투표율이 높았던 50대의 표심이 당락을 갈랐다는 분석이 지배적인데, 유신독재를 겪은 이 세대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불안과 향수죠. 우리 세대는 부모 부양은 물론, 자식 교육에 결혼까지 모든 걸 떠안은 유일한 세대예요. 노후 대비할 여력도 없는데 직장에서 밀려나고 자영업으로 망하고 재취업 기회마저 없으니 극도로 불안할 수밖에요. 길은 두 가지예요. 어떻게든 이 시대?헤쳐나갈 출구전략을 세우거나 과거의 향수에 기대는 것. 전자를 택할 수 있는 사람은 전체 800만 명 중 300만 명 정도예요. 민주당 쪽에서 500만 명쯤 가져갈 수 있다고 봤는데,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 놓친 거죠. 너무 급진적으로 나갔어요. 특히 복지의 무상시리즈는 패착이에요. 정책의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무상이란 말을 남발해 재정 부담 따지지 않고 다 퍼준다는 식으로 비치니 불안감만 부추겼어요. 극도로 불안하고 기댈 곳 없는 사람들이 경제성장을 이룬 과거에 대한 향수로 빠져든 거죠. 박 대통령이 그걸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상징자산을 가졌으니 맞아떨어진 것인데, 문제는 지금부터죠.
문제는 지금부터다, 무슨 뜻이죠?
그 환상이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다는 거예요. 그 냉각 속도보다 빠르게 기대의 상승을 일으키려면 기업들 찾아가서 정년 연장 하면 지원 하겠다, 노총에 가서 일자리 나누기 하자, 이렇게 호소해야죠. 그런데 당선 이후 두 달 간 아무 것도 안 했어요. 대통령은 아예 모습을 감춰 버렸고, 인수위에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사회적 관점에서 조직할 사람도 없었어요. 대통령 곁에서 조언을 하고 욕심 부린다 싶을 땐 제동을 거는 사람들이 필요한데, 과연 그런 사람이 있는지도, 대통령 자신이 의견을 구하는지도 모르겠어요. 박 대통령은 정치생활 15년 동안 시련도 많이 겪었지만 그럴수록 성공의 보답을 너무 많이 받았어요. 지금 상황이 어떻게 보면 그런 개인적 성공이 낳은 위기인 셈이죠.
취임식 날인 25일자 중앙일보 1면에 실은 글에선 "지난 두 달 동안 뜻밖의 단독적 행보에 대한 세간의 평가, 통치철학과 소통능력에 대한 약간의 우려는 곧 부식되고, 민주시민의 성숙한 코러스를 조율하는 멋진 컨덕터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썼는데.
우려를 그렇게 표현한 거죠. 용비어천가가 되면 곤란하지만 취임식 날이니까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쓴 거죠. 믿는다, 믿는다, 이렇게 쓴 게 다 이렇게 해주세요, 제발, 이런 뜻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심정은 정말 쓰라리죠. 4일 대국민 담화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기대합니다, 믿습니다, 그랬는데, 저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텐데, 비장하고 분노에 찬 얼굴로 나와서 그 기대를 여지없이 깨뜨렸잖아요. SO(케이블방송국) 관할권이 그렇게 문제가 될 사안인지도 의문이지만, 미래창조과학부가 어떤 청사진, 무슨 전략을 갖고 있는지 말한 게 없잖아요. Nobody knows! 정부조직 개편안은 그런대로 괜찮다고 봐요. 문제가 생겼을 때 왜 국민들에게 이건 이렇습니다,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지 않느냐는 거죠. 김종훈씨가 사람은 우수하지만 관료조직을 이끌며 테크놀로지 분야에 숨어있는 발전의 에너지를 파악하고 뽑아낼 역량이 있는지는 의문이에요.
지난해 인터뷰에서 "박 후보의 인식공간에서 생물학적 아버지와 정신적인 아버지를 분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는데, 이번 담화를 보면 더 강하게 밀착된 게 아닐까 싶어요.
동감합니다. 이건 연구 감인데, 청와대 떠난 뒤 18년 동안 박정희 시대가 마구 부정 당하는 걸 지켜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떻게 버텼을까, 여기에 답이 있는 것 같아요. 후보 시절 보여줬던 부드러움과 소통 노력을 회복할 수 있을지, 이 문제가 한국의 5년 미래를 좌우하겠죠. 자기성찰이 없는 사람은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없어요. 청와대 안에서 청년기를 보냈지만 70년대 대학을 다녔으니 시위대를 봤을 거 아녜요. 거리로 나가 시위대 안에 섞여서 돌 던지는 사람들에게 감정이입을 해보시라, 그래야 국민 절반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다, 간곡하게 당부하고 싶어요. 저는 아직 기대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기자들도 처음엔 비판할 거 많아 좋다 그랬는데, 점점 걱정이 늘어요.
올 봄 노동전선으로부터 엄청난 도전이 나올 텐데, 정부가 어떤 대안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대선 때 줄곧 얘기했던 비정규직 문제도 정부 부문보다 더 중요한 민간 분야는 어떻게 할지 아무 말이 없어요. 노동 정책은 아예 없는 것처럼 보여요. 아니, 노동자 5명이 숨진 게 보통 일이에요? 그 안에 엉킨 문제들이 얼마나 많겠어요. 그걸 '법과 원칙'으로 막겠다? 아휴, 어쩌려는 건지 모르겠어요.
어느 쪽이 옳은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헷갈리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준다면?
한국사회는 보수가 집권하든 진보가 잡든 적어도 한 발짝 정도는 앞으로 나갈 거예요.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이제 시민들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더 큰 비중을 둬야 합니다. 저는 통치권을 시민권으로 대체하는 시민민주주의가 시대적 과제라고 봐요. 정치개혁의 핵심은 이명박 정부 시절 완전히 단절된 시민사회와 정당을 연결하는 '정치사회'를 구축하는 거죠. 시민단체들이 중심 역할을 해야 하고, 권리 주장보다는 책임과 양보를 앞에 두는 교양시민을 길러야 합니다. 제 앞가림만 하느라 소홀히 했던 사회에 대한 채무 이행을 舅渼?거죠. 예컨대 경쟁교육에 반대한다고 해놓고는 대치동 학원가로 이사 간다, 이런 짓 하지 말자는 거예요. 저도 애들 대학 보낼 때 한 짓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죠.
송 교수는 에서 퇴직자들에게 새로운 삶과 맺는 계약의 표식으로 조선시대 선비들처럼 자찬 묘비명을 써볼 것을 권했다. "저도 궁리 중인데, '서양 지식을 가지고 조선 지식의 에너지를 길어 올려 완성하려 했다. 그러나 못 했다' 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조선의 깊은 힘을 현대화시키는 게 어찌 보면 불가능한 일 같기도 하고 제 능력의 문제도 있고. 하지만 하는 데까지 해보려고요."
선임기자 jay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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