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그려낸 대통령 링컨의 위대성은 결코 티없는 숭고함에 있지 않다. 그는 자신을 가로막은 의회라는 거대한 오물통을 직시했고, 기꺼이 더러움과 타협했다. 영화 은 그가 오물통 속에서 어떻게 노예해방법이라는 찬란한 꽃을 피워냈는지 보여주는 치열하고 아름다운 정치 연금술에 포커스를 맞췄다.
재선에 성공한 링컨은 1865년 1월 수정헌법 13조의 하원 재상정을 추진한다. 두 해 앞서 공표한 노예해방령을 연방헌법으로 영구히 뒷받침할 수정헌법안은 상원을 통과했으나, 하원에선 이미 한 차례 부결된 터였다. 여당인 공화당 내에서조차 반대 분위기가 강하다. 최대 세력인 보수파는 노예제에 대한 원론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정헌법은 지나치게 급진적이라는 입장이다. 급진파는 반대로 흑인 투표권을 포함하는 완전한 평등을 주장하며 수정헌법을 '굴복하는 타협(capitulating compromise)' 쯤으로 본다. 민주당은 모두 반대다.
이런 상황에서 링컨은 임박한 남북전쟁 종전 전에 수정헌법을 통과시켜야 한다. 전쟁이 끝나면 노예해방론은 한 풀 꺾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데드라인은 1월 31일. 주어진 시간은 서너 주에 불과하다. 공화당 의석은 과반을 넘었지만 56%에 불과하다. 3분의 2 찬성을 확보하려면 공화당이 모두 찬성해도, 민주당에서 20개의 이탈표를 만들어 내야 한다. 링컨의 '오물통 연금술'은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공화당 보수파 보스인 프랜시스 블레어는 찬성표를 모아주는 대신 자신에게 평화협상을 맡겨달라고 한다. 재빨리 종전에 합의해 수정헌법을 저지하겠다는 포석이다. 타협한 링컨은 끝내 신의를 저버리고 은밀히 협상을 지연시키는 협잡을 벌인다. 급진파 보스인 새디어스 스티븐스에겐 정공법으로 나간다. "북극성만 바라보고 걷다가는 발 밑의 진창에 빠질 것"이라며 현실적 타협을 호소한다.
오물통 연금술의 정점은 민주당 의원 공략이다. 이미 총선에서 패해 잔여임기만 남겨놓고 있는 64명 중 설득 가능한 25명이 대상이다. 링컨은 막장 정치 브로커를 고용해 이권을 미끼로 사실상 매표에 나선다. 도로 톨게이트 관리권이 넘겨지고, 우체국장직이 팔린다. 차기 의원직을 보장하는 꼼수도 나온다. 링컨이 기꺼이 이런 오욕(汚辱)을 감내하는 진심을 터뜨리는 건 투표 전야에 이르러 부정을 힐난하는 참모진 앞에서다. 그는 분연히 토로한다. "이런 망할, 인간적 의미나 가치 있는 걸 단 한가지도 못 이루겠어!"
마침내 1월 31일 의사당. 역시나 하는 반대와 뜻밖의 찬성이 엇갈리는 긴장 끝에 표결은 8명 결석 혹은 기권, 찬성 119, 반대 56표로 마무리 된다. 링컨의 승리다. 환호를 뒤로 하고 조용히 자기 집으로 돌아온 스티븐스가 흑인 아내에게 던진 한마디는 링컨의 위대함에 대한 스필버그 감독의 헌사다. "19세기의 가장 위대한 조치가 통과됐소. 미국에서 가장 고결한 남자의 지원과 사주를 받은 부패에 힘입은 거요."
개봉 예정작을 두고 장광설을 늘어놓는 건 소명의식과 진심만큼은 결코 링컨에 뒤지지 않을 박근혜 대통령을 의식해서다. 국회에서 정부조직법 협상이 교착되자 박 대통령은 진심과 소신을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강공을 택했다. 하지만 협상은 오히려 더 꼬였다. 끝없이 타협점을 찾았던 링컨과 달리, 퇴로를 막고 배수진을 쳤다. 영화 대사를 빌면 '무능한 어중이떠중이'에 불과한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비굴한 타협'을 하는 대신 소리 높여 북극성을 가리켰지만, 결국 '발 밑의 진창'에 빠진 것이다.
영화 속의 링컨은 위대함의 초상(肖像)일 뿐이다. 따라서 박 대통령에게 링컨처럼 하라는 건,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에게 왜 이순신 장군처럼 못하느냐는 힐난처럼 허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링컨의 잔상(殘像)에 미련이 남는 건, 박 대통령의 귀한 소망이 더 이상 진창에서 헤매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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