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 제일평화시장에서 구두 가게를 운영하던 김창환(45ㆍ가명)씨는 올해 1월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불경기로 직원들 월급이 밀리자 2년 전 1,000만원 일수대출에 손을 댄 게 화근이었다. 금세 갚을 수 있을 것 같던 원리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결국 가게는 부도가 났고, 마흔 넘어 만났던 아내도 업자들의 빚 독촉에 곁을 떠났다. 그는 "장사라는 게 될 때도 있고 어려울 때도 있는데 순간의 절박한 선택이 이런 결과를 가져올 지 정말 몰랐다"며 고개를 떨궜다.
흔히 사람들은 "연 수백% 이자의 사채를 왜 쓰는 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젓는다. 사채 이자의 무서움을 아는 것이다. 하지만 사채를 써야 하는 사람들의 절박함은 잘 모른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불법 사채 이용자들은 "당장 사채 말고는 아무 데도 돈 빌릴 곳이 없는 상황에서 나중의 결과까지 계산하긴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김창환씨도 처음엔 캐피탈사와 등록 대부업체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김씨의 조건으론 300만원 이상 빌릴 수 없다고 했다. 급하게 1,000만원이 더 필요했던 그는 지인의 소개로 100일간 이자 200만원(매일 12만원씩 상환ㆍ연간 136.2% 금리)을 약속하고 돈을 빌렸다.
액수가 적을 때는 그런대로 버틸 수 있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빌려주는 사채업자들이 때론 고맙기까지 했다. 그런데 김씨는 거기서 멈추지 못했다. 장인이 도와주겠다는 말을 믿고 처가 식구들과 함께 지낼 집을 마련하는 데 사채 9,000만원을 더 끌어들였다. 하지만 갑자기 장인의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김씨의 원리금은 100일간 매일 108만원씩 갚아야 하는 수준까지 불었다.
지난해 10월 강원도에서 설렁탕집을 시작한 장모(64)씨는 식당 주방기구를 마련하려 수 차례 서민금융상품을 신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장씨는 "햇살론은 나이가 많아 일할 능력이 부족하다고, 미소금융은 전화요금 연체가 있다고, 은행권 일수대출은 사업자등록 1년이 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며 "등록 대부업체도 생각해봤지만 정부가 마련한 서민금융상품조차 이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제도권 금융은 두렵게만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누군가 건네 준 명함 전단의 일수대출을 통해 300만원을 빌렸다. 6만원씩 65일간 갚는 거래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연 이율이 304.9%나 됐다. 직원 월급이 모자라 600만원을 더 빌리고 장사가 안 돼 재료 구입비로 600만원을 또 대출받으면서 빚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났다. 그는 "사채가 급한 불을 꺼주니 처음엔 고마웠는데, 불법 수수료와 고금리가 결국 족쇄가 됐다"고 한탄했다.
적지 않은 사채 이용자들은 불법 거래를 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무지'를 뒤늦게 후회한다. 피부미용실을 운영하던 40대 전모씨는 "언니의 지인에게서 돈을 빌리는 줄 알았기 때문에 그것이 말로만 듣던 불법 사채인지, 이자도 그렇게 높은지 몰랐다"고 털어놨다.
전씨는 2008년 8월 가게를 확장하면서 목돈이 필요해지자 500만원을 빌렸다. 하루 6만원씩 100일간 갚는 조건(연 136.2%)이었다. 전씨의 법률상담을 도왔던 최재천 민주통합당 의원실의 송태경 보좌관(민생연대 사무처장)은 "불법 사채는 현행법(이자제한법)상 30% 이상 이자를 받을 수 없지만 원금보다 훨씬 많은 돈을 갚고도 여전히 업자의 독촉에 시달리는 이용자들이 허다하다"며 "뒤늦게 대응하려 해도 현금만 받거나 채무자의 통장 비밀번호를 넘겨 받아 직접 인출하는 등의 수법으로 거래 증거를 남기지 않는 사채업자가 늘고 있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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