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공무원·교사가 사채업자 등치는 브로커 노릇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공무원·교사가 사채업자 등치는 브로커 노릇

입력
2013.03.07 17:36
0 0

미등록 영세 대부업체를 운영하는 A씨는 고교 교사 김모(56)씨에게 수백만원을 빌려줬다 끙끙 앓는 신세가 됐다. 당초 A씨는 김씨가 신분이 확실한 교사인데다 급여명세서, 은행계좌 거래내역서 등을 확인한 만큼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류는 모두 조작된 것이었고, 김씨는 이미 급여에 압류가 수두룩하게 들어와 돈을 돌려받을 길도 없었다. 김씨를 찾아간 A씨에게 돌아온 말은 "내 제자가 검사인데 조사받고 싶으냐"는 협박이었다. 보증을 섰던 다른 공무원을 찾아가봤지만 마찬가지 태도였다. A씨는 결국 빌려준 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허위 서류와 맞보증으로 전국의 영세 대부업자 수십명을 갈취해 온 공무원, 교사 일당이 검찰에 붙잡혔다. 각기 다른 기관에 소속된 이들은 점조직 형태로 움직이며 직접 범행 대상을 물색하고 사기대출을 알선해 수수료까지 챙겨온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사건에 연루된 공무원, 교사가 더 늘어날 수도 있어 이들이 사법처리될 경우 공직사회에 큰 파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

서울북부지검 형사4부(부장 이진우)는 7일 허위 급여명세서와 은행계좌 거래내역서를 이용해 상습적으로 대부업체의 돈 수억원을 빌려 쓴 뒤 갚지 않은 혐의(사기 및 사문서위조 등)로 교사 김씨와 소방공무원 정모(35)씨, 공기업 직원 임모(39)씨 등 3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앞서 같은 혐의로 구속된 소방공무원 최모(58)씨, 구청 공무원 안모(47)씨와 짜고 조직적으로 범행을 벌였다. 김씨는 2007년부터 최근까지 41차례에 걸쳐 1억8,000만원을, 정씨는 2011년부터 최근까지 22차례에 걸쳐 1억5,000만원을, 임씨는 2010년부터 최근까지 38차례에 걸쳐 2억1,000만원을 각각 갈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각각 사업 실패나 도박중독 등으로 채무에 시달리다 사채를 썼고 이 과정에서 알게 된 브로커의 소개로 서로 만나 범행을 공모한 것으로 밝혀졌다. 브로커는 "신용불량자라도 공무원이나 교사는 신분을 확실하게 보기 때문에 신용조회가 허술한 업체에 재직증명서를 내고 맞보증을 서면 돈을 빌릴 수 있다. 급여명세서는 압류 사실이 없는 것으로 조작하면 된다"며 이들을 소개한 뒤 대출받은 돈에서 약 30%를 떼갔다.

김씨 등은 이렇게 배운 수법으로 직접 사채업자들을 등치는 브로커로 나섰다. 검찰 조사결과 이들은 영세 대부업체를 물색한 뒤 주변 공무원들에게 돈을 빌리게 해 10~20%의 수수료를 받아 챙기고, 맞보증을 서 직접 대출을 받아 50%씩 나눠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김씨는 학부모 3,4명에게서도 돈을 빌린 뒤 갚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대부분 빌린 돈을 도박이나 유흥에 탕진했으며 계속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달아난 브로커를 쫓는 등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이들의 사기 행각은 소방관 최씨가 돈을 뜯긴 전국 곳곳의 대부업자들에 의해 잇달아 고소를 당하고도 경찰에서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은 점을 이상하게 여긴 한 초임 검사가 재수사에 착수하면서 덜미를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점조직 실태를 밝혀낸 차호동(34ㆍ사법연수원 38기) 검사는 2006년 사법시험에 합격, 지난해 서울북부지검에 임용된 초임이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손효숙기자 sh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