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公傷) 판정이 나도록 동료경찰관 수백 명이 탄원서를 냈던 서울 수서경찰서 교통조사계 하병무(40) 경사가 지난 6일 끝내 숨을 거뒀다. 서울시내에서 가장 교통량이 많은 곳에서 근무하다 폐암 진단을 받고 6개월여 간 투병해 온 하 경사는 치료와 재해판정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7일 오후 빈소가 마련된 송파구 경찰병원에는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지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6개월이 갓 지난 아들을 친정에 맡기고 빈소를 지키던 부인 송지욱(38)씨는 "남편이 끝까지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 유언을 남길 경황도 없었다. 고된 근무환경과 스트레스를 견뎌야 하는 경찰관에 대한 처우와 사회 인식이 나아지면 좋겠다"며 눈물지었다.
하 경사가 청천벽력 같은 폐암말기 진단을 받은 것은 지난해 8월이다. 태어나 담배 한 대 피운 적고 타고난 건강체질이었기에 더욱 충격이었다. 얄궂게도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그날은 결혼 9년 만에 얻은 아이가 세상과 첫 인사를 나누는 날이었다.
하 경사는 세상을 떠나는 그 날까지 폐암에 걸린 이유를 납득하지 못했다. 1년 전 건강검진에서 아무 이상이 없었고 180cm가 넘는 체격에 남다른 운동신경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그와 7년 이상 함께 근무했다는 경찰관 박모(40)씨는 "하 경사는 담배는 아예 못하고 술도 멀리한 '바른 생활 사나이'"라고 말했다.
이런 사정을 아는 동료 경찰관들은 "나쁜 공기와 격무에 따른 스트레스가 원인일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하 경사는 교통조사계 발령을 받은 2010년 12월부터 서울에서 차량이 가장 붐비는 강남역 주변을 맡아 매연 속에서 일해야 했다. 하루 평균 25건의 사고를 동료 2명과 처리하느라 한 달에 28일을 출근할 만큼 일에 시달렸다.
수서경찰서는 "매연과 업무 스트레스로 폐암이 발병했다"며 공무원연금공단에 공무상재해를 신청했지만 지난달 22일 "폐암과 직결된다는 의학적 근거가 불충분하다"며 불승인 통보를 받았다. 동료 경찰 400여명의 서명과 150명이 작성한 탄원서도 소용없었다. 이 경찰서 공무상 재해 담당자는 "공단 측에 재심사를 청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은미기자 m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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