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단 비밀회의(콘클라베)를 며칠 앞둔 4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사제 복장을 한 남성이 연방 미소를 띠며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자신을 이탈리아 정교회의 바실리우스 주교라고 칭한 그는 광장에 모인 추기경들과 악수를 나누는가 하면 사진기자 앞에서 이탈리아의 세르지오 세비아스티아나 추기경의 손을 꼭 잡고 포즈도 취했다.
자연스럽게 추기경단 회의장으로 들어서려던 바실리우스 주교를 저지한 것은 스위스 경비대원이었다. 그가 허리띠 대신 목도리와 스니커즈 차림을 한 것을 의심한 경비는 주교 명단에서 바실리우스란 이름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가 속해 있다는 이탈리아 정교회 역시 존재하지 않는 분파였다.
가짜 주교의 정체는 독일인 활동가 랄프 내피에스키. 추기경 회의에 잠입하려던 이유에 대해 그는 “가톨릭의 아동 성폭행에 대해 할 말이 있어 들어가려 했다”고 말했다고 영국 일간 더 선 등이 보도했다. 독일 주간 슈피겔은 내피에스키를 “수수께끼에 싸인 인물”이라고 소개하면서 그의 웹사이트가 독일의 유명 정치인들과 찍은 사진으로 도배돼 있으며 그가 섹스토이(인형모양의 성 보조기구) 지지자라고 전했다. 언론과 거의 접촉이 없는 내피에스키는 과거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교회가 성을 터부시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교황청이 “24일까지 차기 교황이 선출될 것”이라고 밝힌 이후 교황청 안팎에서는 각종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미국의 ‘사제 성추행 피해자 네트워크(SNAP)’는 6일 ‘교황이 돼선 안 될 추기경 12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추기경들은 성추문을 축소 또는 은폐하려 했거나 성추행을 저지른 신부를 옹호한 이들이다. 체코의 도미니크 두카 추기경은 “사제 성추행 의혹의 10%만이 사실로 입증됐다”고 말했다가 명단에 올랐다. 이탈리아의 타르시치오 베르토네 추기경은 “아동 성추행이 잇따르는 이유는 동성애자들이 사제로 ‘침투’했기 때문”이라는 발언으로 비난을 샀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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