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나면 또 사고가 터지니 불안해 살수가 없습니다."
국내 최대의 단일 수출단지인 경북 구미에 '사고 도시'라는 오명이 각인되고 있다. 경부고속도로 구미IC로 진입, 우회전을 하면 40m 높이의 수출탑이 우뚝 솟아있는 구미시가 각종 유독가스 누출사고로 몸살을 앓다 7일에는 급기야 기름탱크 폭발사고까지 발생, 주민들의 불안감이 극에 달하고 있다.
7일 오전8시21분쯤 구미시 오태동 ㈜한국광유 구미저장소 저유탱크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사고는 구미공단 난방유를 공급하는 저장소에서 벙크B유 탱크로리가 옥외 저유탱크에 있는 기름을 옮겨 싣고 현장을 빠져나간 후 탱크 내부에서 일어났다. 경찰 조사결과 20만ℓ 용량의 저유탱크에 2만8,000ℓ의 기름을 보관하다 사고 당일 2만4,000ℓ를 출하하고 4,000ℓ의 잔량이 남은 상태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경찰 관계자는 "날이 추우면 아스팔트처럼 굳는 벙커유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저장탱크 내부에 설치된 전기장치의 합선으로 유증기가 폭발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인근 주민들은 하마터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한 폭발 현장을 보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오태동 주민 김모(52ㆍ여)씨는 "하루 건너 한 건씩 대형사고가 터지다 보니 타지역 친척들의 안부전화가 이어지고 있다"며 "내일은 또 무슨 사고가 터질 지 불안하기만 하다"고 하소연했다.
구미에서는 이달 들어서만 세차례 사고가 발생, 시민들의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2일에는 구미국가산업단지 2공단의 반도체 부품공장인 LG실트론에서 불산이 함유된 혼산이 누출됐다. 5일에는 구미시 공단동 구미국가산업단지 1단지의 화공약품 제조업체인 구미케미칼에서 액화염소가스가 누출, 종업원 11명이 부상했다. 이날 사고 후 지금까지 구미순천향병원과 구미보건소 등에는 210여명이 진료를 받았으나 병원 중환자실에서 일반실로 옮긴 서모(35)씨를 제외하고는 아무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진료를 받은 인근 태우EMT 근로자 이모(32)씨는 "염소 용액은 소독용으로도 유용하게 쓰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사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보니 냄새만 조금 맡은 경미한 증상인데도 병원 진료를 받게 됐다"며 불안감을 털어놓았다.
실제 구미에서는 지난해 9월27일 구미국가산업단지 4단지 휴브글로벌에서 발생한 불산가스 누출사고를 겪으면서 시민들은 사고 노이로제에 시달리고 있다. 5명이 숨지고 18명이 숨진 이날 사고 후 진료를 받은 시민만 1만2,243명에 이른다. 구미시 공무원 편모(43)씨는 "구미가 수출대국 한국의 선봉에 섰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데, 잇단 유독가스누출과 폭발사고 때문에 구미의 명성에 흠이 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1973년 1단지가 완공, 현재 5단지가 조성 중인 구미공단에서 사고가 잇달아 터지는 것은 수출과 성장 일변도의 정책에 걸맞게 안전관리 의식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데다 공직사회의 기강이 해이해졌기 때문이다. 대구환경청에 따르면 1995년부터 유해화학물질 업체가 집중한 구미와 포항에 별도의 출장소를 설치, 지도 단속을 했으나 2009년 2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출장소가 폐지됐다. 이에 따라 구미에는 관리대상 유독물 취급 업체수가 136개에 이르지만 구미시 담당 공무원은 환경과와 과학경제과에 모두 2명뿐이다. 그마저 다른 업무를 겸하면서 연간 1, 2차례 형식적 점검만 이뤄지고 있다. 정부와 경북도도 사고가 터질 때마다 안전대책회의를 열고 있으나 평상시 관리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조근래(50) 구미경실련 사무국장은 "지난해 불산누출 사고 후 정부와 구미시는 재발 방지를 다짐했지만 기업 유치에만 매달렸지 안전에는 형식적 조치에 그쳤다"며 "친기업정책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안전에 투자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구미=김용태기자 kr88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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