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원권 지폐가 눈 깜짝할 사이에 만원권으로 변하고 줄을 꼬아 만든 매듭이 순식간에 풀린다. 마술사 이은결(32)의 손 안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일들에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바라본다. 저 마술 속에 숨은 속임수를 반드시 알아내겠다는 듯 말이다.
5일 경희대병원에서 열린 마술치료 도입 세미나에 연자로 나선 이은결은 "마술을 보고 배우면서 집중력을 높일 수 있고 반복된 연습은 운동기능을 키울 수 있다. 또 사람들에게 마술을 보여주면서 언어기능과 자신감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술이 발달장애 아동부터 뇌기능이 저하된 노인, 사고로 신체 장애를 갖게 된 환자 등 다양한 환자들에게 효과적인 치료법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마술이 실제로 치료효과가 있을까. 미국 듀크대는 마술공연과 교육이 생리적 체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이은결은 "뇌성소아마비 환자들에게 마술을 보여줬는데 마술을 이해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던 환자들이 한 달 후에도 그 마술을 정확하게 기억해 말하는 것을 보고 치료 효과를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마술이 환자와 의사 사이의 유대관계를 공고히 하는데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술치료는 1980년대 초반 데이비드 카퍼필드 등 일부 마술사들에 의해 고안됐으나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1988년 미국인 스펜서 부부가 '힐링 오브 매직(Healing of Magic)'이라는 이름으로 체계화하면서 본격적으로 보급됐다. 당시 교통사고로 머리와 척추에 큰 부상을 입은 부부는 힘들고 거부감이 큰 물리치료를 좀더 재미있게 받으려고 마술을 접목시켰고 이후 이론적인 토대를 세워나갔다. 20년 넘게 진화하면서 미국에서는 마술치료사라는 직업이 등장할 정도로 보편화됐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생소한 분야다. 이은결은 "외국 치료법을 국내 실정에 맞게 보완, 도입하는데 일조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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