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세탁 방지 국제기구의 의무조항 최초로 명시
안보리 결의 내용 분석
한국일보가 6일 입수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새 대북 제재 결의안 초안에는 핵ㆍ미사일 등 북한의 무기 개발에 전용될 수 있는 돈의 흐름을 확실히 차단해 전방위로 북한을 옥죄겠다는 국제사회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돼 있다.
가장 큰 특징은 ‘국제 자금세탁 방지기구(FATF)’에 규정된 회원국의 의무를 결의안에 최초로 명시한 점이다. FATF는 정부와 민간 금융회사가 함께 참여하는 기구로, 핵ㆍ생화학ㆍ대량살상 무기와 운반수단에 대한 생산ㆍ획득ㆍ개발ㆍ수출ㆍ중개에 이용되는 모든 자금과 서비스 제공 행위를 폭넓게 금지하고 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북한은 마약ㆍ위조지폐ㆍ무기 거래 등으로 벌어들인 자금을 해외 차명계좌나 유령회사를 통해 세탁해 무기 개발 재원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자금 규모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결의안은 이와 함께 북한의 개인과 기관, 북한을 대리하는 단체의 해외 금융거래가 핵ㆍ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이용될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될 경우 회원국이 이를 차단하도록 규정했다. 이에 비해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응해 지난 1월 채택한 안보리 결의 2087호는 북한 관련 금융 거래에 대한 회원국의 감시를 강화하도록 촉구하는데 그쳤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크게 반발했던 2006년 방코델타아시아(BDA)식 금융 제재에 비해 이번 결의안이 범위나 강도 면에서 진일보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결의안은 제재 회피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현금다발(벌크캐시)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명하는 데 머물러 향후 회원국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제재의 실효성을 높이는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화물 검색도 의무조항으로 강화됐다. 결의안에 따라 북한에서 발송되거나 북한으로 유입되는 모든 화물에 대해 무기 개발과의 연관성이 의심되는 경우 유엔 회원국은 검색에 나서야 한다. 결의 2087호가 공해상 의심선박에 대한 검색 강화 기준을 마련하는 선언적 조항에 그쳤다면 이번에는 국제사회가 실제 제재에 동참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또 북한을 거쳐 입ㆍ출항하는 선박이 회원국의 검색을 거부할 경우 자국 진입을 차단하도록 규정해 북한을 고립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결의안은 선박뿐 아니라 항공기도 검색 대상에 포함시켰다. 금수 대상인 북한의 핵활동에 우라늄 농축 활동도 적시해 고농축우라늄(HEU)을 이용한 북한의 핵개발이 비확산체제를 위협하고 있는 새로운 추세를 반영했다.
이외에 북한 외교관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도록 촉구한 것은 면책특권을 악용해 외화벌이 창구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의 불법행위를 차단하고 대외적으로 북한의 손발을 묶으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이 조항은 특히 미국이 강하게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의안은 부속서에 북한의 탄도미사일ㆍ재래식 무기 거래와 연관된 조선광업개발무역회사의 연정남 사장 등 3명을 제재 대상으로 추가했다. 북한 무기 개발의 산실인 제2자연과학원 등 2곳의 해외 자산도 동결했다. 특히 북한 권부의 취향을 반영하는 보석과 요트, 고급승용차, 스포츠카 등 사치품의 구체적 품목을 제재 결의안에 처음으로 명시한 것도 눈길을 끌었다.
한편 유엔 안보리의 추가 대북 제재 결의안 마련 과정에서 한국의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지위가 도움이 됐다는 평가가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결의안 초안을 보면 전체적으로 전보다 한 단계 진전됐다”면서 “협의 과정에서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지위가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주유엔대표부는 미국, 중국과 수시로 접촉하면서 초안 작성 작업에 간접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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