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말 서울 중구 서부역에서 인천국제공항까지 밴형화물자동차(일명 콜밴)를 이용한 싱가포르인 탄모(45)씨는 한시도 요금 미터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요금이 무섭게 올라가더니 인천공항까지 무려 26만원이 찍혔다. 일반택시로는 통행료를 포함해도 6만원이 안 나오는 거리다. 탄씨가 영수증을 요구하자 기사는 태연히 영수증을 끊어 건넸다. 엉뚱한 차량 번호가 기재된 허위 영수증이었다.
올 1월 2일 오후 11시 서울 명동에서 동대문의 한 호텔까지 중국인 오모(34)씨 일행이 탄 콜밴 요금은 9만6,000원. 택시로 5,000원 안팎의 요금이 나오는 3㎞ 남짓한 거리다. 오씨 일행의 항의에 기사는 거칠게 문을 잠근 뒤 언성을 높였다.
상상을 초월한 바가지요금으로 외국인 관광객에게 한국이미지를 먹칠한 콜밴 기사들이 무더기로 경찰에 적발됐다.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6일 외국인을 상대로 폭리를 취한 혐의(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 등)로 백모(45)씨 등 콜밴 기사 2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백씨 등은 지난해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심야에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는 서울 명동과 남대문 등에서 조작된 미터기를 이용해 모범택시보다 최대 20배 비싼 부당 요금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 결과 이들은 20㎏ 이상 짐을 지닌 승객만 태울 수 있는데도 '빈차' 표시등과 갓등을 달아 모범택시처럼 위장해 외국인들을 태웠다. 미터기를 달 수 없지만 ㎞당 4,000∼5,000원의 기본요금에 30∼60m 주행 시 900원∼1,350원씩 올라가도록 조작된 미터기도 부착했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허위 차량번호와 사업자등록번호가 기재된 영수증까지 발급했다.
1999년 도입 이후 말썽이 끊이지 않는 콜밴의 불법행위를 멈출 방법은 없는 것일까. 관광 한국 이미지에 미치는 악영향을 고려하면 하루 빨리 '수술대'에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본 오사카에서 지인 4명과 한류관광을 왔다는 마치코(46ㆍ여)씨는 "한국 여행을 다루는 일본 인터넷 카페 등에서 '콜밴 붓다구리(바가지)' 요금을 조심해야 한다는 게시물이 많다"고 말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는 1만여 대의 콜밴이 운행 중이고, 서울에는 800여 대가 달리고 있다. 서울시는 올 1월부터 최근까지 부당 요금 징수나 미터기 설치 등 불법영업을 한 콜밴 75건을 적발했지만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친다. 택시로 위장하다 걸리면 개선명령 처분을 받을 뿐이고, 재차 적발돼도 과징금 120만원만 내면 그만이다. 승객이 소지하는 화물 기준을 3차례 어겨도 과징금 30만원만 내면 돼 외국인 두 세 명만 등치면 뽑고도 남는다. 사문서위조 로 형사처벌을 받아도 고작 벌금형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애초 표준요금제 없이 승객과의 합의로 요금을 받게 한 콜밴 운영제도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서울시 관계자는 "표준 요금이 없으니 거리 대비 적정 요금을 잘 모르는 외국인은 부당 요금의 표적이 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더욱이 출국을 앞둔 외국인 입장에서는 신고 자체가 쉽지 않고 신고를 해도 피해자가 떠나 버려 사후 적발이 어렵다. 경찰은 이번 수사를 위해 다산콜센터에 접수된 신고를 토대로 이미 출국한 외국인들과 이메일 조사까지 했을 정도다.
국내에 없는 외국인들이 피해금액을 돌려받기도 쉽지 않다. 국토해양부는 콜밴업자가 환급액을 돌려주지 않을 때 영업정지 10일 처분을 하도록 정했지만 환급 기간이 명시되지 않아 사문화된 규정이나 마찬가지다. 국토부 관계자는 "콜밴은 요금합의 운행 방식이라 우선 손님이 환급 요구를 해야 한다"며 "환급 조치 미이행 시 영업정지를 30일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변은해 한국관광공사 매니저는 "일본으로 돌아간 관광객들이 콜밴 바가지 요금을 성토하는 이메일을 보내곤 한다"며 "국가 이미지를 위해서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송은미기자 mysong@hk.co.kr
송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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