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투병 끝에 5일 사망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빈민층의 절대적 지지를 바탕으로 14년 동안 집권한 남미 좌파의 아이콘이었다. 그는 빈민층의 친구와 독재자라는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평가를 받아온 시대의 풍운아였다.
1954년 7월 28일 베네수엘라 남부 농촌마을 사바네타에서 태어난 차베스는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면서 군인의 길에 들어섰다. 사관학교에서 남미 독립영웅 시몬 볼리바르의 사상에 심취한 차베스는 이후 정치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1992년 동료 장교들과 쿠데타를 기도하기도 했다. 쿠데타에 실패한 뒤 “모든 것을 홀로 책임지겠다”고 연설했는데 이 강렬한 연설이 훗날 그의 정치적 자산이 됐다. 정계 입문 4년만인 1998년 대통령에 처음 당선된 차베스는 이후 빈민 우선 정책을 바탕으로 정치력을 확대했으며 2009년 국민투표를 통해 대통령 연임 제한을 철폐하고 지난해 10월 4선에 성공, 본격적인 장기 집권의 길에 들어갔다.
승승장구하던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건강이었다. 그는 2011년 6월 처음 쿠바에서 암 수술을 받았으며 이후 세 차례나 추가 수술을 했다. 하지만 수술은 별 성과가 없었고 이 때문에 4기 취임식도 하지 못한 채 목숨을 잃고 말았다.
집권기의 차베스는 석유 기업을 국유화하고 막대한 오일머니를 동원해 무상교육 및 무상의료, 저가주택 공급 등 저소득층 복지 확충에 주력했다. 이를 통해 1998년 50.4%이던 빈곤층 비율을 2006년 36.3%까지 끌어내렸으며 중학 진학률은 1999년 38%에서 2010년 72%로 상승했다. 그의 집권 시기 영아 사망률과 문맹률도 크게 떨어졌다. 그러나 민간기업 국유화, 외환 규제 등 사회주의적 강경책이 언론 탄압 등과 맞물리면서 중산층 이상의 민심 이반을 초래했다. 일부에서는 그의 정책을 차베스와 포퓰리즘을 합성한 챠비즘(Chavism)으로 불렀다.
대외적으로는 미국과 첨예하게 각을 세우는 행보로 일관했다. 2001년 9ㆍ11테러 직후 미국이 아프간 전쟁을 시작하자 “테러를 동원한 테러와의 전쟁”이라고 비난했고 이듬해 자신을 겨냥한 쿠데타가 발생하자 “배후에 미국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란과 친분을 과시하며 미국과 반대편에 섰고 유엔 총회 연설에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악마”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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