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와 며느리가 같은 대학의 같은 학과 신입생이 됐다. 우석대 한약학과에 13학번으로 입학한 윤동현(55), 김재은(29)씨가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나란히 2013학년도 이 대학 수시 1차 입학사정관 전형에 응시했지만 김씨만 12.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윤씨는 수시 2차 일반전형에 재도전한 끝에 꿈에 그리던 합격증을 받았다. 며느리 김씨는 "서류전형을 함께 통과했으나 면접에서 낙방했던 시아버지가 결국 합격해 함께 학교를 다닐 수 있어 정말 기쁘다"고 했다. 윤씨는 "기회가 된다면 졸업한 뒤 미국처럼 의약품, 일용잡화, 책, 음료 등을 판매하는 신개념 드럭 스토어를 운영하고 싶다"고 계획을 설명했다.
윤씨가 늦깎이 대학생이 된 건 순전히 배움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다. 어려운 집안으로 초등학교 졸업 뒤 공부를 그만두고 제약회사와 개인약국에서 일하던 그는 결혼해 아들 2명을 키우면서도 공부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러다 다시 용기를 내 1988년 11월부터 새벽에 서울 신설동의 한 검정고시학원에 1년간 다니며 중학교 과정을 이수했고, 3년간 방송통신고도 다녔다. 92년엔 방송통신대(중어중문학과)에 입학했지만 매 학기 1주일간 출석해 강의를 들어야 하는 게 부담이 돼 중도 포기하기도 했다. 2002년 입학한 서울사이버대(부동산학과)는 무사히 마쳐 2006년 2월 꿈에 그리던 학사모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제약업계에서 20여 년간 종사한 경험을 살려 '약사'라는 더 큰 꿈을 꾼 것이다. 특히 한약사 자격증을 따 3년 전부터 염증성 만성질환인 '베체트병'을 앓는 아내를 돌보고 싶은 생각이 강해졌다."구청장 표창을 받을 정도로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면서 준비했던 입학사정관제에서 떨어졌을 땐 아찔했죠. 오히려 성적 80%를 반영하는 수시 2차에 고교를 차석으로 졸업한 게 도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
김씨는 건국대 응용생화학과 캠퍼스 커플인 남편과 2009년 결혼해 전업주부로 지내다 시아버지의 적극적인 권유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결혼한데다 육아부담도 있어 쉽지 않았어요. 그때 시아버지가 '전문 자격증을 취득해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걸 준비해보라'고 조언하셨어요. 한약사가 한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서울에서 마트를 운영하는 윤씨와 남편 직장이 있는 충북 청주에서 사는 김씨는 서로 조언자가 됐다. "며느리가 1,500자가 넘는 자기소개서를 글자수 제한(700자)에 맞게 요점만 압축해주고, 띄어쓰기 등 맞춤법을 봐줘 정말 도움이 됐어요."(윤씨) "늦은 나이에도 학구열을 불태우는 시아버지의 모습이 저에겐 큰 자극이 됐습니다."(김씨)
한약학과 남녀 최고령인 두 사람은 7일 첫 전공수업을 듣는다. 시간표를 똑같이 짠 것이다. "4일 입학식에서 만난 동기들이 저희 관계를 안 뒤 신기해하면서도 경험과 연륜이 많아 그런지 잘 따라주더군요. 벌써부터 학교 생활이 기대 됩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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