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소통이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말하느냐가 복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전략'이라는 말이 붙게 되면 위에 열거한 개별 요소를 계산적으로 다룬다는 의미다. '누가'라는 요소에 정치 지도자를 대입시키면 '언제'는 국가의 중요한 시점마다가 되고 '어디서'는 자신의 지지자인 국민들이 있는 조국을 의미한다. '무엇'은 국가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성을 지적하는 행위로 그 자체가 정치 지도자 개인의 소통이 된다.
최근에는 오히려 덜 계산적이고 기본에 충실한 소통이 더 많은 공감과 지지를 얻고 있다. 그만큼 진정성이 중요하며 웬만한 전략으로 국민과 섣불리 소통하려 들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새 정부가 출범하는 시점에 보면 정치 지도자들은 위의 요소 중 '어디서'라는 요소를 중시하는 듯 하다. 대통령 선거를 비롯해 중요한 정치적 선택의 과정에서 뜻 이루지 못한 정치 지도자 중 다수가 대한민국을 떠나 해외에 체류하며 일정 기간 간접적이고 제한적인 소통만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오랜 시간을 거치며 고착화된 우리 정치 현장의 관행이 되었다. 아마 다른 요소들이 가변적이기 때문에 위치적 속성을 최대한 활용해 정치적 재기를 위한 전략적 소통을 지향한 결과로 보여 진다. 승자가 권력을 독식하는 우리 정치문화도 한 원인일 수 있다.
1993년 1월 대선에서 패배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로 장기 외유를 떠났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3년 2월에는 대선에서 패배한 이회창, 정몽준 두 정치 지도자가 나란히 미국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와 국제문제 연구소로 출국했다. 2008년 7월에는 대선과 총선에서 잇따라 패배한 민주당 정동영 상임고문이 미국 듀크대로 연수를 떠났다. 물론 이들 대부분은 길게는 1년, 짧게는 수 개월 만에 정계에 복귀했다.
이번 대선도 예외는 아니었다. 4월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전 교수의 경우 대선 당일 출국해 2개월 넘게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에 체류하며 측근을 통한 간접 소통만 하고 있다.
대부분 해외로 떠날 때는 귀국 계획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한다. 현지에 체류하면서는 제한적 소통을 하며 귀국하기 직전 의미있는 발언을 통한 쟁점화 전략을 도모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제시하며 귀국길에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소통을 일방적인 홍보라는 관점에서 보면 정치 지도자의 해외행은 자신의 의도에 맞는 메시지만 전달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된다는 점, 측근에게 보내는 이메일 한통, 현지에서의 발언 등을 전략적으로 관리할 경우 한국 내에서 보다 더 주목을 끌어 메시지 파급효과를 배가시키는 장점도 있을 수 있다. 불필요한 쟁점과의 단절, 그리고 절제된 노출과 소통을 통한 신비주의 전략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이렇듯 신비주의를 추구하면 언론의 관심을 유도하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귀국이라는 이벤트는 이를 극대화시키는 클라이맥스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이제 일방적 소통으로 비춰지고 불통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정치적으로 변신을 꾀하는데 있어 이미지 전환의 핵심 수단으로 일부에서는 해외로 출국해 일정 기간 체류하는 것이 활용되었다는 의미다. 정치적 세탁이란 표현도 그래서 나온 비아냥이다.
저술과 연구 등 진정성이 담긴 진지한 정책 구상의 여정이 아니라면 선거 이후 도피 하듯 출국하는 정치 지도자의 해외행은 바뀌어야 될 정치인 이미지 관리와 소통 방식의 과제다. 오히려 정치적 휴지기에 국민들과 직접 소통하는 용기있는 정치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선거 기간 내내 서민들의 삶을 강조했던 그들이 갑자기 모든 연락을 끊은 채 사라졌다가 자신의 일정에 맞춰 등장하고 또 다시 표를 호소하는 일방적 소통은 가장 구차한 관행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안보와 경제 등 직면한 국가적 과제를 고려할 때 지금은 해외발 정치 지도자의 간접 소통 보다는 대한민국 민생 현장발 직접 소통이 더욱 필요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종혁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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