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5년째 서초구에 살고 있는 김모(69)씨는 서초동 서리풀공원을 산책코스로 자주 이용했다. "주변에 벚꽃 나무들이 즐비해 도심에서도 안락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그는 "30분이면 공원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 이 코스를 걷는 것이 생활의 활력소"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씨는 이제 그'걷기의 즐거움'을 찾을 수 없게 됐다. 지난해 6월부터 서초구가 우면산 산사태 예방공사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서리풀공원 사방사업'으로 굴착기가 공원을 모두 헤집어 놓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산사태가 난 곳을 복구하는 건 이해하지만 15년간 한 번도 비 피해가 없던 공원을 예방사업이라는 명분으로 땅을 파고 나무를 뽑아 버렸다"며 "서초구가 돈을 써가며 버젓이 환경훼손에 나서고 있다"고 분개했다.
2011년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 이후 서울 곳곳에서 산사태 예방공사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산사태 피해를 직접 입은 서초구가 진행중인 서리풀공원 등 예방사업 공사현장 15곳에 대한 사업지 선정을 놓고 타당성 논란이 일면서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특히 서초구가 공사 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투명성이 떨어지는 수의계약을 통해 시공사를 선정해 특혜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5일 서울시와 서초구에 따르면 2011년 우면산 산사태 이후 서울시는 210곳의 산사태 위험지역을 선정, 지난해 3월부터 300억원대 규모의 예방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중 서초구는 우면산 관문사 주변 예방공사와 서리풀공원 수해 복구사업 등 15곳에 대한 예방공사를 진행 중이다. 문제는 당초 지난해 완공됐어야 하는 예방사업이 아직도 곳곳에서 진행중인 데다 서초구는 15곳의 예방사업 (약 78억원 규모)을 추진하는 시공사 선정과정에서 모두 수의계약 형식을 통해 선정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실제로 전문가들과 서울시의 '2012년 산사태 예방 사방사업 계약 현황 목록'을 분석한 결과, 서초구를 제외한 18개 구청에서 맺은 예방 사업 75건 중 수의계약으로 사업을 진행한 곳은 10곳에 불과했다. 서초구의 한 의원은 "수의계약을 줬다면 자격측면에서 전문성이 뛰어난 업체로 봐야 하고 공사기간 내에 효과적으로 일을 끝내야 하는데 15곳 중 절반이 공사가 아직 진행 중"이라며 "특히 이 중 6곳은 준공기한을 2차례나 변경하며 공사를 지연시키고 있어 주민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의계약으로 선정된 해당 시공업체에 대한 자격논란도 일고 있다. 경북 안동에 소재한 한 산림조합이 서초구에서만 8곳, 총 20억원 규모의 공사를 따냈으며 이 중 현재까지 완공이 된 곳은 3곳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서초구는 서울시와 전문가들이 합동조사를 실시해 예방공사 사업 타당성을 조사했으며 수의계약을 한 것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구청 관계자는 "예방 공사 현장으로 선정된 지역 근처에서 산사태가 났기 때문에 사전에 미리 예방하자는 차원에서 공사를 시작했고 사방사업법에 따라 수의계약을 체결했다"며 "특정 산림조합은 서울시 추천 조합 목록에도 포함돼있고 전문가의 추천에 따라 선정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해 예방사업 시공사를 선정할 때 공문을 통해 '수의계약을 지양하라'고 명시했다"며 "특정 업체를 추천하기는커녕 예방사업은 복구공사처럼 긴급하지 않은 사업이어서 공개경쟁입찰 형식을 통해 이뤄지도록 할 것을 분명히 했다"고 반박했다.
전문가들은 서초구가 예방공사 사업지 선정 기준과 이유를 공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수곤 서울시립대 교수(토목공학과)는 "지난해 초 서울시가 '우면산 산사태의 원인규명과 복구 등에 관한 서울시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했을 당시 예방 공사 사업에 대해 공개 입찰 형식을 취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며 "예방 공사에 수백억원의 세금이 투입되는 만큼 공사의 타당성을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수해지역도 아닌데 마치 산사태가 발생한 지역인 것마냥 이곳에 커다란 수로를 만든 것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라며 "이는 시와 구청의 대표적인'보여주기식 행정'의 산물"이라고 덧붙였다.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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