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부터 9회까지 단 한 차례도 벤치에 앉지 못한 코칭스태프, 동료의 엉덩이를 두드릴 여유조차 없었던 선수단. 한국 대표팀이 5일 대만전에서 보여준 벤치 분위기는 전혀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앞선 6차례의 평가전, 1차전이었던 네덜란드(0-5)전에서 줄곧 접했던 모습이었다. 객관적인 전력과 대회에 임하는 마음가짐, 준비 상태에서 모두 뒤진 한국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탈락이라는 충격적인 나락에 빠졌다.
역대 최악의 전력
대회 전부터 한국을 보는 시선은 불안했다. 류현진(LA 다저스)과 김광현(SK) 봉중근(LG)이 한꺼번에 빠졌고 김진우(KIA)와 홍상삼 이용찬(이상 두산) 등도 부상을 이유로 제외됐다. 그나마 타선은 역대 최강으로 평가 받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이대호(오릭스) 김태균(한화) 이승엽(삼성) 등은 컨디션 조절에 애를 먹었고 팀 전체적으로 타격 슬럼프가 찾아왔다. 여기에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낸 추신수(신시내티)는 소속 팀 적응을 이유로 태극마크를 사양했다. 간절히 바라던 군 면제가 되자 "반드시 국가대표에 뽑히고 싶다"는 애국심은 자취를 감췄다. 결국 원하는 대로 베스트 전력을 꾸리지 못한 '류중일호'는 일본행 비행기도 타보지 못한 채 WBC 대회를 마감했다.
절실함에서 밀렸다
객관적인 전력뿐만 아니라 절실함에서도 밀렸다. 대만은 이번 대회를 철저하게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소식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대만프로야구연맹(CPBL)과 각종 관련 단체에서는 국가대표 선수들을 위해 물리치료사와 트레이너, 의사 등으로 구성된 13명의 어시스트 조직을 발족했다. 선수들의 부상 방지와 컨디션 조절을 위해 각종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다. 앞선 1,2회 대회 모두 1라운드에서 탈락한 대만은 이처럼 선수들뿐만 아니라 연맹과 관련 단체들이 명예 회복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위해 대회에 임했다. 반면 한국은 절실함이 없었다. 마땅한 동기 부여가 없었고 승리에 대한 갈망도 턱없이 부족했다. 2라운드 진출을 낙관한 전체적인 팀 분위기도 문제였다.
류중일 감독의 착오가 화를 불렀다
류 감독의 착오도 1라운드 탈락에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한국은 1차전인 네덜란드전에서 단 1점도 얻지 못해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대만을 상대했다. 최소 2점만 뽑았다면 6점 차 승리에 대한 부담이 없었지만 1차전을 너무 쉽게 포기했다. 이미 승부가 기운 상황이었다 해도 류 감독은 네덜란드 투수를 상대로 점수를 뽑았어야 한다. 한 야구인은 "네덜란드전에 오승환을 내보낸 것은 더 이상 실점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런 마음 가짐을 왜 공격에서는 발휘하지 않았는지 의문스럽다"며 "번트라도 댔어야 하는데 너무 쉽게 경기를 포기했다. 1차전이 끝난 뒤 사실상 2라운드 진출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최종 엔트리도 문제다. 28명의 선수 중 유원상(LG)과 윤희상(SK) 등은 이번 대회 그라운드 조차 밟지 못했다. 3차전 선발인 장원준(롯데)도 다른 투수들의 몸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예상과 달리 중책을 맡았다. 류 감독은 전지훈련 동안 충분히 최종 엔트리를 바꿀 수 있었다. 하지만 무리하게 기존의 선수들을 밀어 부쳤고 결과는 충격적인 1라운드 탈락이었다.
타이중(대만)=함태수기자 hts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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