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나마 배움의 길이 열린 만큼 내친김에 열심히 공부해서 중학교도 가야죠.”
새 학기를 맞은 5일 오전 산골마을인 경남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 고전초등 교정에 개량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할머니들이 나란히 들어섰다.
증손자뻘 되는 학생들의 배웅을 나온 게 아니라 당당히 이 학교 1학년 신입생으로 첫 등교한 것이다.
4일 이 학교 병설유치원생 6명과 함께 입학한 할머니 신입생은 막내 남향순(61)씨부터 맏언니 정태희(80)씨까지 모두 7명.
이들은 올해 신입생이 없어 자칫 폐교 위기에 처한 이 학교 신입생으로 입학해 6년간 정규 초등학교 과정을 이수할 예정이다.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농촌 노인들이 한글을 깨치기 위해 마을 주민센터나 문화센터 등에서 비정규교육을 받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이처럼 정식으로 초등학교에 7명이 한꺼번에 입학한 것은 이례적이다.
고전초등은 올해 신입생이 한 명도 없었고 2학년도 2명에 그치는 등 전교생이 27명에 불과한 초미니학교다. 할머니들 덕분에 신입생도 받고 학생수도 37명으로 늘었다.
그러나 이들 할머니들의 입학은 ‘학부모’인 자식들과 경남도교육청, 하동교육지원청, 고전면사무소 등의 많은 노력과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박정희 고전초등 교장은 “학생들과 다른 학교에 미칠 영향 등을 생각할 때 조심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았다”면서 “이왕 입학했으니 어르신들에게 맞는 맞춤형 교육과정을 짜 성심껏 가르치겠다”고 말했다.
만학도 할머니들은 입학선물도 푸짐하게 받았다. 이 학교 교직원 13명은 학용품을 선물했고, 고전면장학회에서는 1인당 10만원씩의 장학금을, 고전면사무소에서는 교복으로 입을 개량한복을, 한국남부발전㈜ 하동화력본부는 할머니들의 책걸상을 각각 선물했다.
최고령 입학생인 팔순의 정태희 할머니는 “배움의 길을 열어 준 학교측에 감사드린다”며 “증손주 같은 학생들과 함께 졸업장을 받을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1학년 담임 박윤희(49) 교사는“시어머니를 모시는 마음으로 정성껏 지도하겠다”면서 “할머니들과 의논해 수업시간을 조정하는 등 배움에 불편이 없도록 최대한 배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경남에서는 올해 9개 초등학교가 신입생이 한 명도 없었고, 20개 학교가 신입생이 1명에 그쳐 신입생 수(2만9,584명) 3만명 선이 무너졌다.
이동렬기자 d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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