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열음이 요란하다. 박근혜 정부의 산뜻한 출범을 기대했던 적잖은 이들이 머리를 외로 꼰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35일째 표류중이다. 청와대 대변인들이 번갈아가며 등장하고 홍보수석이 전면에 나섰다.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하면서 야당을 압박했다. 그래도 안 되자 급기야 대통령이 몸소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했다. 야당은 강력하게 반발한다. 한 마디로 정치실종이다.
이 같은 상황은 이미 예견된 바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정부조직개편안을 만들면서 국회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여당 지도부에게조차 귀띔 한 마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1월 30일 새누리당 발의 형태를 빌어 국회에 개정안을 넘겼다. 만약 인수위가 자신들의 원안대로 국회를 통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야말로 아마추어리즘의 극치다.
행정부와 입법부의 작동원리는 천양지차다. 행정부는 효율의 극대화를 지향한다. 하지만 입법부는 민주적 타당성을 우선시한다. 비유하자면 행정부가 액셀러레이터 역할을 한다면 입법부는 브레이크의 기능을 담당한다. 앞으로 달려가야 하는 행정부 입장에서는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 브레이크 덕분에 미구에 닥칠지 모를 위협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다.
헌법 제40조는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삼권분립의 기본 정신이다. 국민들의 재산과 권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법률의 제ㆍ개정은 국민의 대의기관인 입법부의 고유 권능이다. 정부조직개편안은 대통령에게는 새로운 국정운영의 기본포석이지만, 국민들에게는 일상의 삶을 뿌리 채 흔들 수도 있는 엄청난 변화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시간과 노력의 낭비가 이만저만이 아닐 때도 있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기다려야만 한다. 끝없는 인내심으로 야당을 설득해야 한다. 기분 같아서는 확 뒤집어엎고 싶어도, 그래서는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는 것이 대의제 민주주의의 근본원리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어려운 것이다.
행정 권력과 입법 권력이 함께 가는 내각책임제와 달리 대통령제 아래에서는 행정부와 입법부(특히 야당)의 충돌로 말미암아 정국교착상황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그럴 때 대통령이 빠지기 쉬운 것이 국민투표의 유혹이다. 즉 국민들에게 직접 찬반을 묻는 것이다. 물론 그때 빠지지 않는 것이 신임의 연계다. 국민들은 긴장하고 입법부는 무력화되기 마련이다.
2003년 5월 21일 노무현 대통령은 5ㆍ18기념식 파행에 대해 사과의 뜻을 전하러 온 5ㆍ18 행사 추진위원들에게 "대통령직을 못해 먹겠다는 생각이, 위기감이 든다"고 말했다. 대통령에 취임한 지 채 석 달이 되지 않아서 벌어졌던 일이다. 그만큼 대통령직이 가지고 있는 무게는 무거운 것이다. 행정부의 수반이면서 또 국가전체의 궁륭(穹窿)이 바로 대통령이다.
창업이수성난(創業易守成難). 정권을 잡기는 쉬워도 그것을 운영하면서 지키는 것은 어렵다. 대통령의 중심이 흔들거리면 나라 전체가 함께 흔들린다. 박 대통령의 정치역정은 '법치와 원칙의 삶' 그 자체다. 당장은 손해를 보고 안타깝더라도, 보다 긴 안목으로 꿋꿋이 걸어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서는 안 된다.
새 정부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처리 또한 마찬가지다. 야당을 국정운영의 파트너로 인정해줘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반대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역지사지의 배려가 있어야 한다. 또한 그들의 주장이 때로는 억지에 가까울지라도 경청해주는 인내의 미덕을 발휘해야 한다. 그런 다음 명분 있는 타협을 통해 결실을 거두어야 한다.
취임식 행사의 대미를 장식했던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의 첫 소절을 직접 불렀던 박 대통령의 노랫말을 생각해 본다.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래야 국민이 행복해 질 수 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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