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8일째인 4일 대국민 담화문을 내고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를 둘러싼 대야(對野)전선에서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불퇴(不退)의 각오를 시위하듯 이전에 쉽게 볼 수 없던 결연한 표정과 단호하고 강경한 어조로 야당의 협조를 촉구했다. 종종 주먹을 불끈 쥐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절박한 심정" "헌정 사상 초유의 일" "껍데기만 남는 것" 등의 강경한 표현을 동원했다. 박 대통령은 과학기술과 방송통신의 융합에 기반한 정보통신기술(ICT)산업 육성 필요성을 역설한 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국가의 미래를 위해 이 문제만큼은 물러설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 대통령은 시종일관 날을 곧추 세우며 배수진을 쳤다. 그는 방송 진흥 기능의 미래창조과학부 이관 등의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해 "오랜 고심 끝에 만들어진 것"이라며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고 국민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겠다는 목적 외에 어떤 사심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새 정부가 방송을 장악하려 한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인ㆍ허가권을 방송통신위원회에 둬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박 대통령은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의 핵심인 지상파, 종편, 보도채널 주제를 모두 방통위에 그대로 남겨두기로 했고, 뉴미디어 방송사업자가 보도방송을 하는 것은 지금도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뉴미디어 방송사업자가 직접 보도방송을 하는 것을 더 엄격히 금지하는 방안도 제시했다"며 "과거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정치적 논쟁으로 이 문제를 묶어놓으면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의 사퇴 표명은 박 대통령의 단호함을 더욱 부각시켰다. 박 대통령은 "삼고초려해 온 분인데 정치 현실에 좌절을 느끼고 사의해 정말 안타깝다"며"해외의 인재들이 들어와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정치적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담화문 발표에 이어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5일까지 정부조직 개편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새 정부는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식물정부가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며 강경 기조를 이어갔다.
박 대통령은 1998년 정치 입문 이래 승부처에서 회군한 적이 거의 없다. 2002년 한나라당 탈당 사태나 노무현 정부에서의 4대 입법 저지, 2010년 세종시 원안 관철 등에서 그랬다. 고비 때마다 거둔 승리 경험은 지금의 박 대통령을 만들었지만 한편으로 주변의 조언을 잘 듣지 않는 '불통'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도 있다.
한편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조직법 처리 방안과 관련해 "표결 처리하면 국회 본연 임무를 깨끗하게 마칠 수 있지만 여야 타협안 창출은 국민 통합을 뒷받침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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