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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사회 꿰뚫는 '뾰족한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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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사회 꿰뚫는 '뾰족한 통찰'

입력
2013.03.04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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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의 사제'가 귀환했다. 다양한 못의 모양과 용도를 통해 인간의 삶과 사회, 우주의 운행원리를 통찰해온 김종철(66) 시인이 네 번째 못 연작 시집 (문학수첩)을 펴냈다. 1992년 시작된 이래 (2001), (2009)에 이어 4년 만이다. 돌쩌귀 고리못, 거멀못, 무두정, 족임질못, 광두정, 곡정, 철정, 나사못…. 이제 이 목수의 어휘들은 시인의 혀끝에서 제 본래의 용례와 의미를 벗어 던지고 인간 사회와 그 관계망의 상징으로 홀연히 해방된다.

이번 시집에는 서정시인으로 하여금 서정시를 쓰지 못하게 하는 사회 현실을 비판적으로 노래한 따끔하고도 뻐근한 시편들이 실렸다. 복음 장사에 나선 종교의 세속화는 '이 밤, 죽은 생선 한 마리도/ 들어 올리지 못하는 당신의 휴거'로, 중소기업 후려치는 대기업의 횡포는 '죽어야만 빠져나갈 수 있는/ 을만 죽는 을사(乙死)조약'으로 표현된다. 이밖에 강정 해군기지 건설 논란, 환경 오염, 노숙자 문제 등 시인의 눈길이 외면하지 못한 한국사회의 난맥상이 총망라돼 있지만, 그 중 시인이 작정하고 다룬 것은 본인의 월남전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한 고엽제 피해 문제다.

"제가 지난해 국가유공자 인증을 받았어요. 국가에서 참전 수당 등으로 월 15만원을 줍디다. 그 돈을 처음 받고 친구들을 불러모아 막걸리를 샀죠. 먼저 간 전우들 음복이나 하자 했던 거예요. 나를 포함해 참전 군인의 90%는 고엽제 피해잡니다. 이 문제를 다루지 않는 것은 시인으로서 내 직무유기입니다."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떠난 자유 용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조작된 전쟁의 용병이었다. 빨간 팬티 한 장 걸치고 배 안을 돌아다니는 '아직 늙지도 죽지도 못한/ 젊은 잎새의 전우'들은 '한 장의 연꽃으로 가린 심청의 아들'들이었다.

이번 시집에는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익살스러우면서도 유려한 말놀이(pun)가 두드러진다. '세상살이 하나 다운받아/ 손아귀에 쏙 들어와 있는 스마트폰의 앱'이 '니가 내 애비다'의 '애비'가 되고, '암탉이 울어야/ 집안의 아랫도리가 빳빳하게 서는 세상'에서 '아버지는 꿈속에서도 호통'치신다. '닭쳐!'

"심각한 소재와 주제를 다루는 만큼 표현은 쉽고 유머러스하게 가려고 했어요. 시적 긴장을 늦추는 방향으로 앞으로는 나아볼까 합니다."

조앤 롤링과 댄 브라운의 작품을 국내 독점 출간하는 성공한 출판 사업가로서, 그에게는 시를 놓을 '기회'가 몇 번인가 있었다. 하지만 시를 놓아버리고는 그 스스로 "생존의 가치를 확보할 수 없었다"고 한다. 출장과 미팅과 계약과 접대 사이, 신앙처럼 '시만은 놓지 말자' 다짐하고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더더욱 분투하는 그를 두고 동료 시인들은 지독하다고들 말한다.

시인은 "다음 시집으로는 전봉준과 종군위안부, 잔 다르크처럼 역사에 못 박힌 자들을 소환하는 작업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뒤이어 첫 시집 '서울의 유서'를 오마주 한 '못의 유서'로 '못 시리즈'는 끝낼 계획. "나도 앞으로는 달도 노래하고, 꽃도 노래하고 안 해야겠습니까? 삶의 풍요와 즐거움을 노래하는 서정시를 좀 써보고 싶어요."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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