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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발렌티노와 '묵시록의 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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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발렌티노와 '묵시록의 네 기사'

입력
2013.03.0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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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매력과 아름다운 용모로 무성영화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의 스타 루돌프 발렌티노가 첫 주연을 맡은 영화 '묵시록의 네 기사'가 1921년 3월 6일 개봉됐다. 무명이었던 발렌티노는 영화 속에서 탱고 솜씨를 선보이며 자신의 매력을 한껏 발휘해 당대 최고의 섹스심벌로 떠올랐다.

세계 최초의 아이돌 스타, 영원한 은막의 스타 등 많은 별명을 지니고 있는 발렌티노는 1895년 5월 이탈리아 카스텔라네타에서 태어났다.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프랑스 어머니를 둔 그의 본명은 로돌프 구글리엘미였다. 1913년, 18세 되던 해에 미국으로 이민을 온 그는 잘생긴 외모와 능숙한 춤 솜씨로 맨해튼의 댄스 홀에서 일을 시작했고 여성들의 인기에 힘입어 직업댄서로 명성을 높여갔다. 할리우드에서 출세할 생각으로 로스앤젤레스로 이주 후 이름을 발렌티노로 바꿨다.

삼류영화에 출연하며 주로 악당 역할의 엑스트라를 하던 그는 1919년 '젊음의 눈'을 시작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2년 뒤 개봉한 '묵시록의 네 기사'에서 여배우 앨리스 테리를 상대로 주인공 홀리오역을 맡으며 화려하게 부상했다.

영화제작자 렉스 잉그렘과 준 마티스가 반전을 소재로 만든 이 영화는 발렌티노를 스타로 만들어줌과 동시에 지금까지 가장 큰 수익을 올린 무성영화로 평가 받고 있다.

영화 속에서 다른 남자와 춤을 추던 여인을 유혹해 능숙하고 날렵하게 탱고를 추는 모습을 선보인 그는 하루 아침에 전세계 여성들의 이상형이자 당대의 섹스심벌로 떠올랐다. 유혹적인 탱고를 추던 쾌락적이고 나태한 인물에서 책임감이 있으면서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유연한 변신도 돋보였다. 조각 같은 외모를 지녔던 그는 여성 팬들을 의식해 몸매가 날렵해 보이도록 셔츠 속에 코르셋을 입었고 머리칼을 기름으로 빗어 넘겼다. 최대한 관능적으로 보이도록 하기 위한 제스처였던 셈이다.

그 후 '족장','춘희','피와 모래'등에 잇따라 출연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발렌티노는 1926년 8월 23일 뉴욕에서 사망했다. 사인은 궤양 수술로 인한 합병증. 그의 나이 불과 31세였다. 스타의 예고 없는 죽음은 팬들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 사망 후 1주일 동안 10여 명의 여성 팬이 자살했으며 뉴욕에서 치러진 장례식에는 할리우드의 유명인사 등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애도했다.

여성들에게는 최고의 우상이었지만 비평가들에게는 화장한 호모 같다는 혹평을 받았던 루돌프 발렌티노는 후세의 평가를 떠나 당대의 사회 현상이자 '팬'이라는 개념을 처음 정착해준 스타였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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