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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과 로드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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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과 로드맨

입력
2013.03.04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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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시카고 불스는 매직 존슨ㆍ압둘 자바가 이끌던 80년대 LA 레이커스를 능가하는 NBA 사상 최강의 팀으로 꼽힌다. '불스왕조'의 중심은 물론 마이클 조던이지만, 불세출의 스몰포워드 스카티 피펜과 파워포워드 데니스 로드맨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왕조였다. 로드맨은 2㎙가 채 안 되는 상대적 '단신'임에도 강력한 체력과 볼에 대한 무서운 집중력으로 NBA의 골 밑을 평정했다. 윌트 체임벌린 이래 역대 최고의 리바운더로 로드맨을 꼽는 데는 누구도 이의가 없다.

■ 정작 로드맨을 더 유명하게 만든 건 그의 기행이다. 빨강, 초록, 표범무늬 등으로 수시로 바뀌는 머리 염색에 요란한 피어싱, 온몸을 덮은 문신 등 기괴한 용모에다 마돈나를 비롯한 숱한 연예인과의 염문, 끔찍한 여장차림, 음주, 성추행 등으로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경기장 안에서의 잦은 싸움, 구타로 벌금과 출장정지는 거의 일상이었다. 시즌 중에 헐크 호건과 레슬링경기를 하는가 하면, B급 영화에 액션스타로도 출연했다.

■ 그가 돌연 평양에 나타났다. 근엄하게 굳은 표정의 북한 관리들을 주변에 두고 코와 입술에 잔뜩 피어싱을 한 티셔츠 차림의 그가 거침없이 박장대소를 하는 등의 사진을 보면 세상에, 만화도 이런 만화가 없다. 테이블에는 자본주의의 상징 코카콜라 캔까지 버젓이 놓였다. 김정은의 표정은 꿈에 그리던 어릴 적 우상을 만난 딱 그것이었다. 경기장에서 방자하게 낄낄거리는 로드맨 일행을 못마땅하게 흘겨보는 몇몇 눈초리에서도 그런 이질감이 읽힌다.

■ 일각에선 70년대 미중 대화의 물꼬를 튼 '핑퐁외교'를 거론하며 막연한 기대감을 내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핑퐁외교는 양 국가차원의 면밀한 시나리오에 의해 진행된 것이어서 애당초 비교할 만한 것이 아니다. 김정은이 정확히 어떤 의도로 로드맨을 초청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북한 관료들이나 인민대중이 보기에 저 막돼먹은 '자본주의 쓰레기'의 품에 안겨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최고 존엄'의 모습이 곱게 비쳤을 것 같지는 않다. 아무래도 이건 실수한 것 같다.

이준희 논설실장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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