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수요 급증에도 피해주민 삶은 퍅퍅
일본 도호쿠(東北) 대지진 발생 2주년(11일)을 앞둔 지난달 27일 쓰나미와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방사능유출 사고로 폐허가 된 현장을 다시 찾았다. 이와테(手岩)현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에서 출발, 미야기(宮城)현 게센누마(気仙沼) 등을 거쳐 후쿠시마 원전 반경 10㎞ 지점인 후쿠시마현 나미에마치(浪江町)까지 200㎞에 이르는 사고 현장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경제재건 의지에 힘입어 재해복구의 열기가 넘쳤다. 반면 고향을 등지고 가설주택 등에서 피난 생활중인 주민들은 난방비와 생필품 가격 상승으로 허덕이고 있었다. 아베노믹스의 명암이 재해현장에서도 고스란히 부각되면서 삶의 질은 개선되지 않는 껍데기 부흥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리쿠젠타카타 다카타마쓰바라(高田松原) 해안은 7만여그루의 소나무 중 유일하게 쓰나미에 살아남은 기적의 소나무(본보 2012년 3월5일자 1면)로 유명한 곳이다. 주민 1,700여명이 쓰나미에 희생된 이 곳은 지난해 찾았을 때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쓰레기는 대부분 처리됐다. 쓰나미 피해로 뼈대만 남은 일부 건물도 막바지 철거작업이 한창이었다. 하지만 기적의 소나무는 볼 수 없었다. 뿌리가 염분에 부식돼 고사하자 밑둥을 베어버린 것이다. 대신 주민들과 시민단체는 소나무 속을 비운 뒤 방부처리를 거쳐 박제 상태로 만드는 작업을 마쳤다. 인공 생명을 얻은 기적의 소나무는 12일 제자리로 돌아온다.
해안가에서 1㎞ 떨어진 고지대에 쓰나미 피해 주민 150여가구가 모여 사는 가설주택을 찾았다. 북위 40도에 가까운 북쪽지역이라 추위가 대단했다. 지바 미네코(77) 할머니는 “엔저 때문에 기름값이 지난해보다 많이 올라 겨울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며 “가설주택 계약기간도 2년이 지나면 만료되지만 갈 곳이 없어 하루하루가 불안하다”고 말했다.
미야기현 게센누마는 바다에서 1㎞ 떨어진 육지로 떠내려온 길이 60m의 330톤급 어선 제18교토쿠마루호를 찾는 관광객들로 북적댔다. 인근 가설상가는 관광객들에게 선박 사진을 넣은 기념품과 토산품을 팔아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수요도 반짝 경기로 끝날 것 같다. 게센누마 시당국은 선박 인근에 기념공원 조성을 추진했으나 선박 주인은 4월부터 배를 해체하겠다고 발표했다. 지역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여론도 있지만, 쓰나미의 현장을 보고 싶지 않다는 주민들의 의견이 워낙 거센 때문이다.
인근 미나미산리쿠(南三陸) 주민들도 처지는 비슷하다. 쓰나미가 밀려오기 직전까지 재해대피 방송을 하다 숨져 천사의 목소리라는 별명을 얻은 고 엔도 미키의 사연이 전세계에 알려지면서 여름 성수기 주말에는 1,000명이 넘는 추모 관광객들이 성황을 이뤘다. 하지만 겨울이 되자 관광객은 급격히 줄어 주말에도 단체 관광차량 2, 3대만이 찾고 있다. 엔도의 흔적이 남아있는 재해대책본부도 4월부터 해체작업에 들어간다. 건물 부식이 심하고 사고현장의 터를 현재보다 5, 6m높이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근 가설상가에서 의류점을 하는 아베 에이세이(64)는 “재해대책본부가 사라지면 관광객이 줄 수 밖에 없어 앞으로 살 길이 막막하다”고 전했다.
반면 도호쿠지역 최대 도시인 미야기현 센다이(仙台)시 인근은 부흥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복구 건설회사와 인부들이 이곳을 거점으로 하고 있어 숙박시설은 연일 만원이고, 식당업도 호황이다.
일본 언론은 “재해복구에 투입되는 돈이 센다이로 집중되고 있다고 불만을 나타내는 재해지역 지자체가 늘고 있다”며 “지역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정부 차원의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재해지역에서조차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리쿠젠타카타, 게센누마=글ㆍ사진
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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